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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샤넬이라도 싸게 사면 장땡이지"…MZ들 '돌변'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76회

중고명품 시장 성장하는 이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사원 김모 씨(35)는 소비자가 900만원이 넘는 샤넬의 지난 시즌백 제품을 최근 700만원대에 구매했다. 100만원 이상 저렴하게 산 비결은 리셀(재판매) 제품이라는 데 있었다. 한 시즌이 지나면 값이 크게 떨어져 리셀시장에 풀린다는 점을 염두해두고 시즌이 바뀌기만 기다렸다가 중고마켓이나 리셀 플랫폼 등을 뒤졌다. 김 씨는 “시즌이 지나면 새 상품 컨디션의 리셀 제품을 할인가로 살 수 있는데 굳이 매장을 방문해 신상을 살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최근 2030 세대가 명품 시장을 인식하는 관점은 김 씨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경기불황 여파로 구매력이 위축되면서 명품을 구매하고 싶지만 제 값을 주고 사기엔 여력이 없는 젊은 층들이 값비싼 신상품 명품 대신 시즌이 지난 리셀 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23일 이베이가 발간한 ‘2024 리커머스 보고서’를 보면 전세계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21년 270억 달러(약 38조8000억원)에서 2025년 770억 달러(110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30대 등 이른바 MZ세대 소비자 60% 이상은 중고 명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시장에서도 거래 건수가 크게 늘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는 지난해 거래 건수가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중 MZ세대가 전체 이용자(2300만명)의 78%를 차지했다.

중고 명품 시장은 팬데믹 때 본격 성장했다. 다만 성격은 다르다. 당시에는 백화점이나 정식 매장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물건을 웃돈을 불사하고 사기 위해 이용했다. 지금은 보다 싸게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명품 수요는 크게 줄었지만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반복하면서 신상품과 리셀 제품 값 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리셀업계 한 관계자는 “신상품 명품 시장과 리셀 시장 간에 가격 격차가 역대 최대치로 커진 덕분에 젊은 층들은 아비트라지(차익 거래) 기회가 생겼다고 본다”며 “동일한 디자인과 품질의 작년 모델이 리셀 시장으로 넘어가면 상당한 폭의 할인을 받고 구매할 수 있는데 굳이 새 시즌의 가방을 정가에 살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품 소유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젊은 층들은 워낙 온라인 거래에 익숙해진데다 기성 세대처럼 ‘한번 사면 평생 쓴다’는 전통적인 사치품 소유 개념에 얽매여 있지 않아 더 저렴한 가격이라면 리셀 거래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 관계자는 “젊은 층들은 애초에 명품을 구매할 때 ‘쓰다가 질리면 되판다’는 재판매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리셀시장 선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고급 상품을 소유하는 갓에 대한 근본적 인식과 소비 방식을 반영한 것이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팬데믹 때 품귀 현상으로 웃돈이 가장 많이 붙었던 샤넬의 고가 제품들이 신품 대비 중고가가 하락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샤넬 대표 제품 ‘클래식 스몰 플랩백’은 1200만~13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1450만원까지 치솟았지만 1년 새 200만원 가까이 떨어졌다. 리셀가가 매장 가격(1497만원) 밑으로 내려간 것이다. 다른 인기 제품의 프리미엄도 같은 기간에 100만~200만원가량 빠졌다. ‘미니 쇼핑백’의 리셀가는 880만원에서 703만원으로, ‘가브리엘 스몰 호보백’은 87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하락했다.

명품 브랜드들도 지난해부터 매출이 급감하면서 최근 중고 명품 사업 검토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리셀 시장 열풍을 더 이상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차라리 리셀 제품을 브랜드 내부로 흡수시면서 재판매 수요까지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끌로에는 자사 제품에 고유한 식별 일련 번호 칩을 내장하기 시작했다. 끌로에 제품을 리셀하기 바라는 고객은 이 내장된 번호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중고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에 등록할 수 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도 온라인 위탁업체와 협력하여 정품 중고 제품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시계 브랜드 롤렉스는 아예 자체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toplights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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