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고백한 거 후회돼요"…20대 초등학교 교사 '한숨'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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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정신질환 교직원 분리' 하늘이법 도입 추진
교사 "정신적으로 힘든 교사 오히려 치료 꺼릴 것"
"최근 교감께 우울증을 고백한 게 후회돼요." (3년 차 서울 초등교사 20대 B씨)
정부가 정신질환 교원을 신속히 분리하는 '하늘이법' 제정을 서두르면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해당 법안이 정신질환을 앓는 교사를 낙인찍어 치료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8일 교육부는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위해 가능성이 높은 교원을 긴급 분리하기 위한 조치로 '하늘이법'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교직적성검사 및 면접 강화를 통해 고위험 교원의 임용을 차단하고, 재직 교원의 정신건강 설문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학교 내 안전 강화를 위해 정신건강 전문가가 포함된 긴급 대응팀을 운영하고 학교전담경찰관(SPO) 증원도 검토한다. 늘봄학교 초등 1~2학년생은 대면 인계 및 동행 귀가를 원칙으로 하며 신학기 시작 전까지 관련 조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사회적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요"…우울증 진단 초등교사의 고백
교사들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진 교원에 대한 조치는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교직원 정신감정이 교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을 가능성이 있다며 섣부른 법안 도입에는 반대하고 있다.서울교사노동조합이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교사 52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하늘이법 관련 긴급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7.5%(5127명)가 질병 휴직 중인 모든 교원이 잠재적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심의위원회가 '고위험 교사'의 직무 수행 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직권휴직이나 면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우울증 진료를 받고 있다는 12년 차 대구 초등교사 A씨는 "학부모 민원으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져 매년 상담을 다니며 치료 중인데 당시에는 공개하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교장과 교감을 포함한 주변 친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렵다"고 고백했다.
이어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며 이번 사건은 그 교사의 질병보다는 폭력성이 문제가 된 것"이라며 "교사의 휴직 복직 여부를 교장과 교감이 판단한다면 그들의 책임감이 너무 무거워지게 되고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3년 차 서울 소재 초등학교 교사 B씨도 "교직 일을 하며 학부모의 민원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이 사실을 최근 학교에 고백했는데 후회가 된다"며 "하늘이법은 본질을 흐린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정신적으로 힘든 교사들이 오히려 치료를 꺼리게 된다는 단점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대전 초등생 살인사건 이후 10여건 법안 발의
하늘이법은 지난 10일 대전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한 초등교사가 학생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다.이 법안은 정신질환이 있는 교사를 조기에 분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특정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 부적합한 교원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조치를 통해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발의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사건 이후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 학교보건법 개정안 등 10여 건의 법안이 발의돼 소관 상임위원회에 접수됐다.
개정안은 △학교장이 교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1개월 이상, 6개월 이내의 휴직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교육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에 '정신질환자'를 추가하는 법안 △교원 임용 단계에서 정신건강 상태 진단 의무화 △교직원 정신감정 의무화 △교내 경찰관 배치 △교원이 정신질환 등으로 직무 수행이 어려울 경우 학교장이 심의를 요청하도록 하는 법안 △정신질환으로 휴직한 교원이 복직할 때 심의위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전문가들 "'고위험 교사' 선별 과정서 보다 철저한 절차 필요"
전문가들도 하늘이법 제정에 동의하면서도, 정신질환의 범위와 정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할 경우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법안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나 방안을 제시한 것은 맞지만, 문제는 '고위험 교사'를 선별하는 과정에 있다"며 "현직 교원들을 중심으로 교원 치유 센터에서 많은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데 법안 도입을 통해 이게 고위험 교사를 걸러내기 위한 행정 데이터로 사용되면 지원이 아닌 감시라고 인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제상 공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법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법 하나만으로 정신질환의 기준점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며 "중증 정도를 판별할 수 있는 절차를 한두 번 더 거쳐 당사자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해 개인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toplights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