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나타난 '볼 빨간 미라이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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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표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여기 있는 게 꿈같아요”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Kawashima Kotori)가 자켓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종이를 펼친 후 서툰 한국어로 한마디를 전했다. 지난 24일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첫 한국 개인전 개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서울미술관서 첫 내한 전시회
양익준 감독도 피사체로 등장
7개월간 을지로 일대 촬영한
150여점 최초 공개
그의 진심 어린 한 마디는 장내를 따뜻한 웃음으로 물들였다. 카와시마의 소탈한 모습은 그의 작품 세계와도 닮아 있다.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것, 그의 사진이 가진 힘이자 매력이다.
일본 도쿄 출신의 사진 작가 카와시마 코토리가 오는 26일부터 서울미술관에서 첫 번째 내한 전시를 연다. 그의 작품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라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의 이름은 낯설더라도 대표작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법하기 때문이다.
새빨간 볼에 방울방울 맺힌 콧물, 불만 가득한 듯 치켜 올라간 눈썹과 아이스크림으로 범벅된 입을 한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바로 그의 대표 작품이다. 연신 얄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어린아이는 ‘미라이짱’으로 통한다. 독보적인 귀여움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까지 강타한 이 소녀는 일본 나카타현 사도가 섬에 사는 카와시마 친구의 딸로, 본명은 츠바키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미라이짱의 집에서 짧게는 3일, 길게는 열흘 정도 머물며 시골 소녀의 순수함을 담아낸 작가는 2011년 사진집 <미라이짱(未来ちゃん)>을 발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꾸밈 없이 일상 속 순진무구한 미라이짱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은 누적 12만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한국에서도 수년간 일본도서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하는 등 이례적인 사랑을 받았다. 출간 12년이 지난 지금, 사진집은 절판됐지만 여전히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될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대학 시절 친구를 촬영해 처음으로 사진집으로 발간한 연작 <BABY BABY>부터 그의 대표작 <미라이짱>, 서울의 모습을 포착한 신작 <사랑랑>까지 총 309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다.
각 작업에서 묻어나는 카와시마 특유의 자연광을 활용한 따뜻하고 감성적인 분위기와 그의 렌즈를 통해 포착된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는 것 또한 이번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다.
2016년 작업한 〈길〉은 국내에도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나카노 타이가를 일 년동안 사진으로 기록한 연작으로, 도쿄, 오키나와, 대만 등을 함께 여행하며 그의 일상을 포착했다. 맨 얼굴에 편안한 의상을 입힌 채 촬영해 유명 배우가 지닌 화려함보다는 그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깊은 개성을 담아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영향인지, 마치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따듯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평소 양익준의 팬이었던 카와시마는 그의 작업을 존경해왔다. 직접 그가 일하는 가게를 찾아가 인사를 건네며 친분을 쌓았고, 이번 전시에서 양익준이 등장하는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작가가 만난 서울의 ‘사람’과 ‘사랑’
사랑랑은 작가가 좋아하는 두 한국어 단어 ‘사람’과 ‘사랑’을 합쳐 만든 그만의 언어다. 그는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과 발걸음을 붙잡는 구름,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을지로의 오래된 간판, 흐트러지는 별빛의 모습을 닮은 노을 진 한강, 처음 만났지만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들을 수 만장 찍고 ‘사랑랑’이라 이름 붙였다.
아울러, 20여 년간 사진에 매진해 온 작가가 최초로 시도한 영상 작업물이 공개된다, 작가가 촬영한 서울의 풍경이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노래 ‘돌아온 울고있을레게’와 어우러져 상영된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toplights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