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기 "재소자도 느낀 '감사의 힘'…매일 다섯가지 고마움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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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전도사' 임대기 교정정책자문위원장(前 제일기획 사장)
징벌 넘어 사회 복귀까지 이끌어야
예산 태부족…기업 관심·후원 절실
임대기 법무부 교정정책자문위원장(69)은 삼성그룹에 40년 넘게 몸담은 ‘삼성맨’이다. 1981년 삼성전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2012년 제일기획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광고·홍보를 맡아 광고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도 받았다. 2017년 제일기획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 겸 대표, 대한육상연맹 회장 등을 지내며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평생 기업인의 삶을 산 그가 돌연 전국 교도소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장관 직속 자문기구로 만든 교정정책자문위원회 초대 위원장직을 맡으면서다. 그 이후로 ‘감사 전도사’가 됐다. 그가 가장 주력하는 일은 자문위의 핵심 사업인 ‘감사나눔 운동’이다. 임 위원장은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년 재소자 3500여 명의 삶이 감사나눔 운동으로 달라지고 있다”며 “교정 선진국들이 갖춘 회복·치유적 사법 시스템을 구축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재소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이라는 게 대부분 취약계층 지원에 쏠려 있습니다. 교도소는 접근 자체가 어렵기도 해 기업에서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죠. 흉악범들의 ‘이상동기 범죄’가 언론에 대서특필돼 재소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데다 국민 법 감정 역시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요.”
▷감사나눔 운동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뿌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성종합기술원장을 지낸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가 퇴직 후 펼친 ‘행복나눔125운동’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매주 선행 한(1) 가지를 하고, 매월 책 두(2) 권을 읽고, 매일 다섯(5) 가지 감사한 일을 적어보자는 캠페인이었죠. 기업체 생산직 직원들의 정서 함양, 노사 화합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목적이었고 삼성중공업, 포스코ICT에서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교도소까지 확산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순동 전 삼성 사장,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 등 여러 유명 기업인이 힘을 보태고, 박한기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지원해 감사나눔 운동이 군부대로 확산했습니다. 재소자들이 동참한 건 2년여 전 신용해 법무부 교정본부 본부장과 제갈정웅 사단법인 감사나눔연구원 이사장이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부터예요. 기업이 시즌1, 군부대가 시즌2였다면, 교도소가 시즌3인 셈입니다.”
▷교도소에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집니까.
“단순합니다. 매일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찾아 글로 써보도록 하는 것이죠. 굉장히 어려워 보여도 막상 해보면 쉽습니다. 별다른 사고 없이 건강하게 하루를 마무리한 것부터 날씨가 좋았던 것,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것 등 단 하루 동안에도 감사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재소자들이 적극적인가요.
“처음에는 꺼렸지만 공모전을 통해 우수사례를 선발하고 가석방 심사 시 가점과 상금 등 인센티브를 주기 시작하니 불이 붙더군요. 이제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공모전에 35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모전 관련 내용은 전국 교도소에 한 달에 두 번 배포되는 감사나눔 신문을 통해 알리고 있고요. 교도소에 유일하게 무상 지급되는 이 신문은 재소자들이 쓴 글과 함께 감사 일기 쓰는 방법 등을 주로 다룹니다.”
▷교도관들도 참여하나요.
“교정 공무원들을 ‘감사나눔 강사’로 양성해 교도소가 ‘범죄학교’가 아니라 ‘재활학교’, ‘갱생학교’가 될 수 있게 노력 중입니다. 특히 17세 이하 소년수 대상 교화 사업은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선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만델라 프로젝트’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교도관에 대한 처우 개선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정 공무원 사이에선 소방·경찰 공무원에 비해 업무 강도에 비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습니다.”
▷예산 확보가 빠듯할 듯합니다.
“하나금융그룹, 삼정KPMG, 두나무 등 여러 기업에서 십시일반으로 꾸준히 후원해주고 있긴 하지만, 넉넉하진 않습니다. 법무부의 한 해 교정 예산이 1조9000억원인데, 대부분 교도관 급여와 시설 관리에 투입돼 교화용 예산을 별도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요. 작년 한 해 감사나눔 활동에 6억원 정도를 썼고, 올해는 그마저도 축소 운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주는 힘은 뭔가요.
“과학적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만 해도 뇌에서 옥시토신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 등 4대 행복 호르몬이 뿜어져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트레스 연구자인 한스 셀리에 박사는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약으로 감사를 꼽기도 했습니다. 같은 식물 두 개를 놓고 한쪽에는 감사하는 말을, 한쪽에는 저주하는 말을 매일 했더니 전자만 잘 자랐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감사가 가져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흐름이 있다는 겁니다.”
▷감사 문화가 어떤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교정 행정은 범죄자 ‘징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교정 선진국들은 징벌 이후의 삶까지 생각합니다. 싱가포르에선 형의 강도가 세지만 재소자 대부분이 출소 뒤 취업할 수 있게 보장해주고 있어요. 정부에서 ‘옐로리본펀드’라는 걸 만들어 이들의 월급을 100% 지급하기 때문에 기업은 부담이 없죠. 출소자 대부분이 취업이 안 되고 생활고로 또다시 범죄 늪에 빠지는 구조를 보면 장기적 관점에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선 이런 선순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교도소 과밀화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잘 교화된 재소자들을 사회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면 과밀 문제 해소에도 기여할 겁니다. 현재 전국 55개 교도소에 약 6만3000명이 수감돼 과밀화율이 125.4%에 육박합니다.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125명이 수용돼 있다는 얘기죠. 재소자 1인에게 보장된 공간은 0.78평에 불과합니다. 마약사범을 중심으로 재소자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교도소 신·증축에 대한 기피 심리가 강해 문제 해결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자문위 활동을 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저는 혜택받은 사람이고, 이젠 그 혜택을 가장 음지에 놓인 이들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가 불러오는 마음의 순화, 정화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감사나눔 운동을 통한 재소자의 정신적 교화가 취업의 고리로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정책적 지원도 절실합니다. 무엇보다 취약계층 위주로 짜인 기업 CSR 프로그램의 1000분의 1이라도 교정 현실 개선에 쓰이길 바랍니다.”
장서우 기자 suwu@toplights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