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은행이 선의의 함정에 빠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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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2
선의로 포장한 담론
다양한 결과 숙고할 기회 빼앗아
韓정치권서 유독 심해
금융권에 선의를 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실 커
곳곳에서 선의의 득실 따져야
조미현 금융부 차장
이 법안이 불편했던 것은 폐지 줍는 노인의 삶이 더 고단해질 수 있다는 단순한 상상조차 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의 피상적인 선의 때문이었다. 폐지 가격이 내려갈 때 정부가 차액을 지원해주면 더 많은 노인이 폐지 수거에 뛰어들 수 있다. 일정 수준의 소득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폐지 수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1인당 소득 감소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정부가 폐지 가격을 보조하면 실제 시장 가격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재활용 업체 등 중간 유통업체에 폐지 가격을 낮추려는 유인을 제공해서다. 다행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 법안을 훗날 코인으로 99억원을 벌었다는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하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좌우를 막론하고 공정과 상생, 동반성장 같은 선의의 미사여구를 정책에 덧씌운다. 선의를 앞세운 정책을 두고 합리적인 토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정의롭고 착한’ 정책을 비판하면 ‘부정의하고 나쁜’ 사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여당은 임대료를 낮추는 건물주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주면서 ‘착한 임대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임대료를 조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건물주는 졸지에 ‘나쁜 임대인’이 됐다.
한국에서 선의의 함정에 유독 잘 빠지는 곳이 금융권이다. 공공성과 시장 논리가 공존하는 산업인 데다 정치권의 개입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지지를 얻기 쉽고 정치적 명분도 확보할 수 있다.
금융이 선의의 함정에 빠질 때 부작용은 간단치 않다. 10년 전 도입된 법정 이자의 최고 한도(연 20%)는 4년째 그대로다. 당초 한도를 정한 것은 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이 높은 이자율로 쉽게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선한 취지였다. 하지만 기준금리는 오르는데 최고 금리가 고정된 탓에 취약계층의 대출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인하된 뒤 2022년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금융 취약계층은 3만3000명으로, 1년 새 1만3000명(53.8%) 늘어났다. 연 20%의 ‘착한 최고금리’는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는 취약계층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은행에 상생금융과 같은 사회공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번 돈을 사회공헌에 투입하면 대출시장에 공급되는 자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은행은 자기자본을 기반으로 대출하는데, 사회공헌에 쓰이는 기부금은 회계상 이익잉여금으로 처리돼 은행의 자기자본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글로벌 은행 건전성 규제인 바젤 규제상 은행은 자기자본의 12.5배(자기자본 비율 0.08%)까지 대출을 공급할 수 있다. 단순하게 가정하면 3000억원의 자금을 사회공헌에 지원했을 때 은행의 대출 여력은 3조7500억원가량 감소한다. 새로 대출받으려는 사람들의 기회가 줄어들고, 기업의 자금 조달은 어려워질 수 있다.
은행이 대출이라는 신용 공급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확대하고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물론 정부 인가를 받아 사업하는 은행은 민간기업에 비해 사회공헌에 더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은행에 선의를 강요하면 강요할수록 성장과 시장경제 효율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있다는 것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비단 금융권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선의라는 함정의 득실을 곰곰이 따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