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처럼 빛난 한국 바리톤의 목소리 뉴욕을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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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이탈리안 오페라는 베르디와 푸치니라는 두 거장 작곡가로 대표된다. 수많은 명작 중 베르디에게 <라 트라비아타>가 있다면, 푸치니에게는 <라 보엠>이 있다. 전자는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비극적 사랑을 그렸고, 후자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낭만과 사랑을 담았다. 두 작품에는 여주인공이 결핵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 트라비아타>는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눈에 들어오지만, <라 보엠>은 서정적인 음악과 현실적인 감정 묘사가 먼저 떠오른다.
지난 3월 13일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서 열린 푸치니의
쇼나르 역에 바리톤 김기훈
벨벳 같은 목소리와 능숙한 연기로
메트에서의 행보 기대하게 해
올 시즌(2024~2025) 메트 오페라는 총 19회의 <라 보엠>을 연주했다. 쇼나르 역으로 노래한 바리톤 김기훈은 총 10회, 베이스 박종민은 콜리네 역으로 다섯 번의 무대를 장식했다. 김기훈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메트에 입성했고, 박종민은 2019년 같은 역으로 데뷔했다.
로돌포 역을 맡은 조셉 칼레야(Joseph Calleja)는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에 비견되는 오페라 가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질감이 느껴지는 톤이었지만 객석으로 전달되는 소리는 다소 가벼운 인상을 주었다. 1막의 하이라이트인 듀엣 아리아에서 미미의 감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았고, 앙상블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특히 특정 음역에서 소리가 갇히며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특히 4막 다락방에서 발레 동작의 일종인 앙트르샤(entrechat)를 코믹하고 능숙하게 선보여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전 공연을 지켜봤던 소프라노 박혜상은 김기훈처럼 연기하는 쇼나르는 처음이라며 그의 재치와 뛰어난 연기력을 칭찬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윤기 나는 음색과 멋진 레가토의 가수'로 소개하며, ‘제한된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호평했다. 그리고 그가 더 큰 역할로 메트에 돌아오도록 함께 기대하자는 희망도 덧붙였다.
뉴욕에서의 열 번째 공연을 마치면 그는 서울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출연한다. 그 후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역에 출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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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