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이닉스, 한화에 주문하자…한미반도체 "HBM 라인서 직원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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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왕국' 주역들 정면충돌…내막 들여다보니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제조기업에 ‘복수 공급사’ 시스템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래야 1개 업체 공장이 멈춰 서도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업체 간 경쟁을 붙여 납품단가를 떨어뜨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복수공급사 선정…8년동맹 흔들
"한곳 의존 땐 가격 협상력 떨어져"
한미 경쟁사로 한화세미텍 선정
하이닉스, TC본더 12대 주문
한미반도체 장비독점 지위 흔들
소송 중인 한화 공급사 선정에 실망
가격 인상 이어 엔지니어 철수
美마이크론 납품 확대 '믿는구석'
하지만 이런 복수 공급사 시스템이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8년 동맹’에 균열을 내는 빌미가 됐다.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에 집중된 TC본더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을 복수 공급사로 선정한 게 ‘감정싸움’으로 번진 것. 업계에선 50조원(2024년 기준) 규모로 급성장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함께 일군 두 회사의 갈등이 자칫 대한민국의 HBM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화와 손잡은 SK에 실망
이랬던 두 회사에 균열 조짐이 불거진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SK하이닉스가 싱가포르 ASMPT를 TC본더 복수 공급사로 고려한다는 소식이 시장에 퍼졌기 때문이다. 뒤이어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 테스트용 TC본더를 공급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소문은 한화세미텍이 지난달 “SK하이닉스에 420억원 규모 TC본더를 공급한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강경 대응 나선 한미반도체
한미반도체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SK하이닉스에 “TC본더 가격을 28% 올리겠다”고 통보하는 동시에 SK하이닉스 공장에 파견한 CS(고객서비스) 엔지니어 수십 명을 회사로 불러들였다. 납품업체가 원청업체를 사실상 도발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특허 침해 소송이 진행 중인데 SK하이닉스가 한화 제품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신규 HBM 공장에 한미반도체 TC본더 비중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두 회사가 이런 강수를 둔 건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미반도체는 최근 세계 3위 D램 업체 미국 마이크론에 TC본더 납품을 늘리고 있다. 대만 공장을 중심으로 HBM 생산라인을 확장 중인 마이크론은 한미반도체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마이크론에 1110억원어치를 팔았는데, 올해는 3~4배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 제품을 구매한 데도 이유가 있다. 특정 장비사에 100% 의존하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할 뿐 아니라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자칫 HBM 생산이 멈춰 설 수 있다는 걱정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2020년 TC본더 개발을 시작해 ‘3차원(3D) 스택’이란 자체 기술을 개발한 한화세미텍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극적 화해 가능성도
HBM산업 선두주자로 불리는 두 회사의 갈등에 반도체업계에선 우려가 나온다. SK하이닉스 HBM 라인에서 품질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다. 국내 대표 반도체 장비 업체로 성장한 한미반도체의 성장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걱정도 끊이지 않는다.극적 화해 가능성도 거론된다. 극한 갈등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가 제시한 28% 가격 인상안을 SK하이닉스가 받아들일지는 이달 말께 결론 날 전망이다.
▶ TC본더
D램을 쌓아 만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 공정에서 열과 압력을 가해 개별 D램을 연결하는 핵심 장비. 개별 칩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고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toplights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