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8년 만에 유상증자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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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타고 주주환원 급증작년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기업들이 매입한 자사주 총액이 유상증자로 조달한 금액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가 적극 추진해 온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증시 체질을 바꾸며 지수 반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에만 3.9조…순매입 세 번째
금융주 중심 밸류업 수혜 본격화
고려아연·KT&G 등 공격적 환원
코스닥도 배당액 늘었지만
여전히 기습 유상증자 많아
◇자사주 매입 늘리고 유증 줄이고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자사주 매입액이 유증 총액을 웃돈 적은 2016년(5조2792억원)과 2017년(8716억원) 두 번뿐이다. 국내 시가총액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매년 7조원 넘는 자사주 매입을 이어가던 때다.
자사주 매입액을 크게 늘린 종목은 주로 금융주였다. KB금융(1조1700억원·3위), 우리금융지주(1조1366억원·4위), 신한지주(9003억원·5위) 등이 대표적이다.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려고 2조1275억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하며 1위 자리에 올랐다. 작년 11월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놓은 삼성전자(1조8117억원)가 뒤를 이었다.
같은 밸류업 수혜주로 꼽히는 KT&G(5468억원), 기아(5000억원) 등의 자사주 매입도 많았다. 김홍범 유경PSG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주식 수를 줄이기 때문에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며 “밸류업 관련주의 주가 상승 잠재력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유상증자 규모는 쪼그라들거나 시행 시점을 뒤로 미루는 분위기다. 소액주주 보호 조치를 강화하라는 당국의 압박 때문이다. 작년 LG디스플레이(1조2925억원), 대한전선(4625억원) 등 일부를 빼면 유증액이 대부분 1000억원에도 못 미쳤다. 금융감독원이 유증에 제동을 건 곳만 14곳에 달했다. 2022년(7곳)의 두 배다. 깐깐한 심사에 나서다 보니 증자를 포기하는 기업도 속출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유증 규모를 5500억원에서 2825억원으로 줄였고, 금양은 아예 철회했다.
◇현금 배당액은 30조원 돌파
현금 배당액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의 현금배당 총액은 30조3451억원이었다. 전년(27조4525억원) 대비 10.5% 늘어난 수치다. 결산법인 807곳 중 현금배당한 곳은 565곳(70%)이었다. 이 중에서 454곳(80.3%)이 5년 연속 배당했다. 시가배당률은 보통주 기준 평균 3.05%로, 5년간 최고였다.작년 배당액은 삼성전자가 9조8086억원으로 1위였다. 이어 현대차(3조7942억원), 기아(2조1942억원), KB금융(1조6867억원) 순이었다.
코스닥시장 배당도 급증세다. 작년 배당액은 2조3130억원(612곳)이었다. 전년 대비 12.7% 증가했다. 배당 법인 수는 역대 최대였다. 하지만 유상증자 역시 빈번했다. 자사주 매입액과 비교하면 유증 총액이 4조9080억원 많았다. 코스닥시장에선 그만큼 주주에게 손을 더 벌렸다는 의미다.
한 헤지펀드 임원은 “코스닥시장을 이끄는 기업 가운데 특히 2차전지 상장사의 재무 여력이 바닥인 상태”라며 “증시 분위기가 개선될 때마다 기습적인 자본 조달에 나서는 사례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이시은 기자 see@toplights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