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관세 유예 협상…국익 관점서 '이원적 전략' 취해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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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동이익 부합하면
주저 없이 합의하되
충돌하는 안건에 대해선
최대한 양보 받아내야
협상 서두르다가간
다 주고도 뺨맞을 수도
앞서 진행된 유럽연합(EU), 일본 사례를 되짚어 보면 미국은 세 가지 원칙으로 상호관세 유예 협상에 임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의지가 확실하게 반영되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국익을 최대한 관철할 수 있다.
철저한 ‘패키지 딜(package deal·통합 거래)’이란 점도 특징이다.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 적자, 재정 적자, 국가 채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 등 과제가 산적한 트럼프 정부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미국은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다. EU, 일본 사례에서 보듯 협상안과 관련해 미국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선부과 후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 정책에서 전자가 최선이란 걸 암시하는 자세다.
‘주한미군 무임승차’ 보상 문제 역시 많은 시간을 할애할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 경제성 차원에서 미국이 접근하기 힘든 숙원 과제다. 여기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4대 안건만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힘에 겨울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상과 관련해 미국이 기습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안건이다. 트럼프 관세 정책은 중국을 겨냥하면서 달러 위상을 강화하는 데 최종 목표를 두고 있다. 이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도 조 바이든 전 정부의 뼈아픈 실수를 명시하고 있다.
5년 전 중국이 보안법을 실시한 뒤 홍콩달러 페그제 폐지가 논란이 됐으나 바이든 정부는 용인했다. 홍콩 예속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중국 위상이 강화됐다는 게 트럼프 정부의 판단이다.
미국 이익만을 중시하는 ‘돈로(DonRoe·트럼프 약칭인 도널드와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주창한 먼로주의를 합친 신조어) 독트린’을 추구하는 여건에서 시장 자율적으로 달러 위상 강화를 기대하는 건 어렵다. 강압적으로 달러 사용권을 확대하는 페그제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달러 가치를 금과 연계(peg)하는 금 본위제를 주장해왔다. 우리에게 기습적으로 달러 페그제를 요구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과의 상호관세 유예 협상은 우리 국익을 증대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미국과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면 주저 없이 합의하되 충돌하는 안건에 대해선 최대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협상을 서두르거나 가급적 미국 요구를 들어주자는 자세는 손정의 사례에서 보듯 다 주고도 뺨 맞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