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소주성 '시즌 2' 될 국가 주도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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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2
정부 지출 줄어 불황 왔다는 李
실제론 지출 늘리고도 저성장
탈원전 등 文정책과 거리 두지만
정부 역할 강조한다는 점은 비슷
주 52시간 등 규제 풀지 않으면
'소주성'처럼 실패로 끝날 것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이 후보는 지난 15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에 출연해 “정부가 지출을 줄여 잠재성장률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지는 것”이라며 “이것을 교정하면 (경기가) 상당 정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경기 침체의 주된 원인이 정부 지출 감소에 있으며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정부 역할을 확대해야 하는 한 가지 근거로 삼는 데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 후보는 “양극화, 불평등, 격차가 너무 커졌다”며 “우리 사회가 총량으로는 더 많은 걸 갖게 됐는데 그것이 너무 한군데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 또한 논란이 적지 않다.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소득 분배를 나타내는 지표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개선되는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자산 불평등이 확대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형 챗GPT를 개발해 전 국민이 무료로 사용하게 하겠다는 ‘기본 인공지능(AI)’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정부가 투자해 AI를 개발하고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니 일부에선 AI 개발자가 공무원이 되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은 주 70시간 근무를 불사하고, 중국 AI 기업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996 시스템’으로 돌아가는데, 한국의 ‘공무원 AI 개발자’들이 주 52시간 규제를 꼬박꼬박 지켜가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 때문에 기본 AI가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공공 배달 앱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후보 역시 경기지사 시절 공공 배달 앱 ‘배달특급’을 만들었다. 배달 수수료 부담을 줄이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정책이지만, 이용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아 매년 수십억원 적자를 내고 있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정부가 나섰다가 질 낮은 서비스에 세금만 낭비한 사례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부 지출이 적어서가 아니다. AI를 비롯한 새로운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앞서가지 못하는 원인 또한 정부가 돈을 쏟아붓지 않아서가 아니다. 진짜 원인은 그와 반대다. 이 후보 말처럼 정부가 경제에서 손을 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에 손을 너무 많이 대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근로시간 제한,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어놓고선 “경제는 민간 영역만으로 유지, 발전되기 어렵다”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정부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후보의 정부 주도 성장은 문 전 대통령의 소득 주도 성장과 비슷한 철학을 공유한다. ‘성장’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민간의 이윤 동기,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이 혁신과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애플도 엔비디아도 챗GPT도 정부가 만들지 않았다. 부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을 뿐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줄이고, 물가와 집값만 올린 채 민주당에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금기어가 됐다. 규제 개혁 없는 정부 주도 성장도 ‘소주성 시즌 2’라는 오명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