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웽~웽~.'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도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오산리에 위치한 그룹홈 '누리의집'에선 하루종일 망치질과 톱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다. 660㎡(200여평) 규모의 벽돌건물 2층 베란다에는 나무 목조물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화형 누리의집 원장은 "지난해 장마 때 베란다에서 비가 새서 엄청 고생했는데 이렇게 지붕을 얹어 방으로 만들어 준다니 이제 장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좋다"며 "이쪽은 아이들 화실로 꾸미고,반대쪽 베란다에는 탁구대도 들여놓고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들뜬 표정으로 설명했다.

2층 베란다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달 초,아이들 방이 있는 1층에는 로레알코리아 직원 6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책상과 의자를 나르고 있었다. 정재원 로레알코리아 이천물류센터 과장은 "그동안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사용하던 낡은 책걸상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웠는데 이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누리의집'은 로레알 가족

이곳은 로레알코리아 이천물류센터 직원 40여명이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6년째 이어오고 있는 그룹홈 지원활동 현장이다. 로레알코리아는 2005년 다음세대재단과 3년간 협약을 맺고 그룹홈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물류센터 인근 29명의 누리의집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 원장은 "2006년 여주 금산면에서 가남면으로 이사올 때도 로레알 직원들이 가족처럼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줬다"며 "집을 지을 때 벽돌까지 손수 나를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함께해 지금은 조카같다"고 털어놨다. 또 "금산면보다 거리가 멀어져 안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직도 매주 한 번씩 와서 집안 구석구석 화장실이나 부엌 등 고장난 곳을 모두 고쳐주고 간다"고 귀띔했다.

그때부터 이천물류센터 직원들은 6명씩 조를 짜서 매주 하루씩 방문하고 있다. 청소와 빨래는 물론 아이들과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야외소풍이나 생일파티를 마련해 아이들과 추억을 쌓으며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다.

누리의집 김장도 로레알 직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10여명의 물류센터 여직원들이 1000여 포기의 김치를 담가준다. 신학기가 돌아오면 중 ·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자비를 털어 교복도 마련한다. 정 과장은 "지난해 5명에서 올해는 10명으로 2배나 늘어 더욱 열심히 적금을 붓고 있다"고 전했다.

그룹홈 지원사업은 이미 2007년 종료됐지만 이천물류센터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불우이웃을 돕는 단순한 자원봉사 활동이 아니라 이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 이천물류센터는 로레알코리아 내부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홍종희 로레알코리아 홍보담당 이사는 "이곳저곳 돌아가면서 돕는 것보다 이천물류센터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한 곳을 꾸준히 지원하도록 방침을 정했다"며 "본사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6~7월은 전 세계 로레알 '시티즌 데이'

프랑스 로레알그룹은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6~7월의 하루를 '시티즌 데이'로 정했다. 로레알 전직원이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는 '사회공헌의 날'이다. 장폴 아공 로레알그룹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에 국가별로 특성에 맞는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하도록 지시했다. 올해가 '시티즌 데이'를 시행하는 첫 해.로레알코리아는 이천물류센터 직원들의 요청으로 누리의집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누리의집 입구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받아온 표창장과 상장들로 한쪽 벽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초등학교 1학년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까지 아이들 모두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상을 펴놓고 함께 공부한다. 이 원장은 아이들 자랑에 침이 마른다. '공부가 특기요,미술이 취미'인 아이들을 위해 로레알코리아에서 준비한 것은 새 방과 책상,의자들.칙칙하고 정돈되지 않았던 아이들의 공부방이 새 컴퓨터와 책상,의자,책장으로 바뀌었다.

빨강 초록 파랑 등 알록달록한 컬러의 의자들과 세련된 디자인의 책상들을 보자 아이들은 한껏 들떠 있는 표정이다. 한쪽에서는 서로 예쁜 색깔의 의자를 차지하겠다며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써 온 책상이라 이제는 다리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낡은 상태였다"며 "컴퓨터 책상도 버린 가구를 주워와 대충 고쳐 썼고,책장도 나무판자에 못을 박아 만들어 지저분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바뀌었다"며 좋아했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책걸상을 교체하는 데 2700만원이 들었다. 이 비용은 350여명의 로레알코리아 직원들이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자선바자회를 열어 정성스럽게 마련했다. 홍 이사는 "직원들이 집에서 전동칫솔부터 카시트,유모차,의류 등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을 하나씩 가져와 300여점의 품목을 모았다"며 "1100만원의 판매 수익금과 회사가 '매칭 기프트제도'(직원들이 마련한 금액만큼 회사에서 마련해주는 방식)로 보탠 1100만원,월드컵 이벤트로 모은 기부금 300만원 등을 합쳐 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을 마친 이 원장은 정 과장의 손을 잡고 "이제는 로레알코리아라는 든든한 가족이 늘 함께해 줘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두렵지 않고 든든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여주=안상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