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사는 곽모씨(57)는 여성이지만 활발한 성격과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3년 전 부도를 낸 이후 재기하지 못하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3~4개월 전부터는 불안 · 불면 증상이 심해지고 식욕이 떨어지고 휴대폰 받는 것조차 기피하는 상태가 됐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상의해 명지병원 정신과 병동 '해마루'를 찾았다. 1개월에 걸친 정서조절 훈련과 약물치료 등을 받고 현재 퇴원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대다수 대학병원 정신과 병동은 후미진 곳에 위치한 데다 분위기도 음산해 소외된 이미지가 강했다. 명지병원은 지난 9월 초 '밝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언덕'이라는 의미의 해마루 병동을 열었다. 그 이름처럼 넓은 통창으로 햇빛이 가득 비치고 창밖엔 초록색 정원과 아기자기한 분수를 조성해 안정감을 유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231㎡의 널찍한 로비에 소파와 벽난로가 놓여 있다. 정신과 병동하면 떠올리는 '창살'도 없다. 환자복은 일상복에 가깝고 자유복장도 허용한다. 이런 배려 때문에 환자들은 소외감을 떨쳐버리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며,입원시키고 돌아가는 가족들도 예전과 달리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시름을 놓는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이곳 송정은 정신과 교수는 "대인기피증 등을 치료하려면 단계별로 사회화 과정을 거치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입원실 외에 거실 같은 공유 공간이 필요하다"며 "이를 감안해 병동의 인테리어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환자는 입원실 내 침대에서 탁자로,다시 로비의 거실 등으로 옮겨가며 외부 환경에 정상적으로 적응하는 치료 절차를 밟는다.

해마루는 국내 대학병원 정신과 병동 중 유일하게 2층에 위치해 고층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투신에 대한 충동이 생겨나지 않도록 배려했다. 다른 대학병원들이 수익성이 낮은 정신과 입원 병상 수를 줄여가는 추세와 달리 44병상을 확보한 것도 이례적이다. 4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우울증 강박증 소아청소년정신문제 스트레스 수면장애 정신분열증 등을 환자의 특성에 따라 스트레스 · 불안관리훈련,대인관계훈련,예술치료,오락요법,약물요법 등으로 맞춤 치료한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우울증과 자살이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여서 새로운 개념의 정신과 병동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햇빛과 조경에 따라 치료효과가 향상되고 입원기간이 단축된다는 게 입증되고 있는 만큼 해마루만의 환경과 통합치료 프로그램으로 효과적인 정신재활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