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1%P 내려라"…버티던 이성태, 긴급 금통위 열어 0.75%P 인하
“뭐? 일요일에 금융통화위원회를 열라고?”

2008년 10월25일 토요일 오후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다녀온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의 주문은 간단했다. “상황이 긴급하니 일요일이라도 긴급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려야 합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일요일에도 회의를 열어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습니까.”

전날(24일) 코스피가 900대로 추락하면서 금융시장이 패닉 상황이 되자 부랴부랴 열린 관계기관 합동대책회의였다. 이 총재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기준금리 인하는 금통위의 고유 권한입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사전예고 없이 금통위원들을 모아놓고 ‘땅땅땅’ 쳐서 낮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항은 했지만 청와대와 재정부, 금융위가 한은을 협공하는 형국이었다. 팽팽한 대립은 월요일인 27일 오전 긴급 금통위를 여는 걸로 절충점을 찾았다. 한 참석자가 못을 박았다. “대신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 전에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27일 오전 8시 긴급 금통위는 이렇게 떠밀리듯이 소집됐다. 이 회의에선 연 5%인 기준금리를 연 4.25%로 0.75%포인트 낮추기로 결의했다. 불과 2주일 전 0.25%포인트를 인하한 데 이어 10월에만 두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린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핵심 정책당국인 재정부와 한은은 시각 차가 컸다. 재정부는 금융경색을 풀기 위해 선제적으로, 과감하게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금리 인하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은은 신중했다. “너무 늦어도 안 되지만 너무 서둘러도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정부는 한은이 위기 대응에 소극적이라고, 한은은 재정부가 중앙은행 독립성을 위협한다고 각각 볼멘소리를 냈다. 손발을 맞춰도 모자랄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마찰음을 내기 일쑤였다.

○한은 금리 인상으로 갈등 촉발

靑 "1%P 내려라"…버티던 이성태, 긴급 금통위 열어 0.75%P 인하
금리를 둘러싼 재정부와 한은 간 마찰의 출발은 ‘리먼 파산’ 이전인 2008년 8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재정부는 물론 청와대도 발칵 뒤집혔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야?” 가뜩이나 금융시장 경색으로 시중 자금난이 심각해 금리를 내려도 모자랄 판이라는 게 당시 정부 쪽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은은 금리를 올렸다.

한은도 할말은 있었다. 당시 한은 부총재였던 이주열의 증언. “그때 유가가 배럴당 147달러까지 올라갔다. 수입물가가 뛰면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까지 치솟았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물가안정목표(연평균 2.5~3.5%)를 지키기 어려웠다. 인플레 기대심리를 제어하기 위해선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준금리를 인상하자마자 한 달 만에 ‘리먼 파산’ 사태가 터진다. ‘한 달 앞도 예측하지 못하느냐’는 비판이 한은에 빗발쳤다.

○재정부, 공공연히 인하 압박

한은이 한번 헛발질을 하자 재정부의 금리인하 압력은 노골화했다. 리먼 사태가 터진 뒤 처음 열린 10월9일 금통위를 앞두고 재정부는 금리 인하를 공공연히 요구했다. “세계 중앙은행이 금리를 1%포인트 이상 내릴때 우리만 1%포인트를 올렸다. 과감히 금리를 내려야 한다.” 강만수 장관은 전화로 이 총재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당시 금융시장은 말이 아니었다. 외화인 달러는 물론 원화도 전혀 돌지 않았다. 증권회사 두 곳이 제때 결제를 못해 은행이 나서서 대신 갚아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람으로 치면 혈액인 금융이 돌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가 죽어간다는 의미다.

재정부와 금융위는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돈줄을 쥐고 있는 한은의 분위기는 달랐다. 한은 관계자의 회고. “당시 이 총재는 ‘마지막 곳간지기인 중앙은행까지 초조해하며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실물지표가 꺾인 것도 아니니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이런 탓에 한은에선 금통위가 열리기 전날인 8일 오후까지만 해도 금리를 내리지 말고 동결하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그날 밤 상황이 반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 중앙은행이 공조체제를 구축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금리 인하를 결정한 것. 오전 9시 시작된 금통위는 두 시간 동안 유례 없는 격론을 벌였다. 평소 같으면 오전 10시쯤 발표되는 금리 결정이 늦춰지면서 금융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오전 11시, 한은 기자실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다’는 장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한은, 인하 타이밍 아쉬워

한은은 나름의 결단을 내렸지만 금리 인하 폭이 당초 기대(1%포인트)에 턱없이 못 미치자 재정부는 망연자실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증언. “결국 한은은 다음번(10월27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0.75%포인트 더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시장상황이 안 좋았다.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제로(0) 금리’도 불사하면서 시장에 돈을 풀어대는 것도 한은엔 부담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한은은 정부와 맞서며 자존심을 지켰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금리 인하 타이밍에선 실패한 것이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0.75%포인트나 내리자 언론에선 ‘이 총재가 내린 구국의 결단’이란 호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총재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정부 압박에 못 이긴 금리 인하였기 때문이다. 재정부에서도 “금리를 한은이 내렸나? 우리가 내리라고 해서 내렸지”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이 총재로선 기분이 상했지만, 대응할 수도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다.

결국 한은은 2008년 10월(두 차례에 걸쳐 1.0%포인트) 이후 11월(0.25%포인트), 12월(1.0%포인트), 2009년 1월(0.5%포인트), 2월(0.5%포인트) 등 5개월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속해 내려 연 2%까지 떨어뜨렸다.

○ 특별취재팀 [email protected]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 서별관 회의

서별관은 청와대 영빈관 앞쪽에 있는 안전가옥이다. 주로 국무회의가 열리는 화요일 주요 경제장관들이 이곳에 따로 모여 현안을 논의하면서 ‘서별관회의’란 명칭이 붙었다. 고정 멤버는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사안에 따라 다른 경제장관이 참석하기도 한다. 서별관은 청와대 울타리 안에 있어 보안 유지에 유리하다. 또 청와대 본관이나 비서동과 달리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안건은 주로 언론에 노출되길 꺼리는 민감한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금리·환율대책 등이 논의됐다. 그런데 금리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은의 이성태 총재가 서별관회의 참석을 매우 꺼려했다. 한은 총재가 다른 경제장관들에 둘러싸여 금리조정 압력을 받는 것 자체가 한은 독립성을 해친다는 인식에서였다. 실제 금융위기 당시 금통위가 열리기 직전 이 총재가 서별관회의를 다녀오면 금리를 내린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