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 벽두부터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가 동시다발적으로 ‘폴리티컬 디스카운드(Political Discount, PD)’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처음 언급한 PD란 통수권자를 비롯한 정치권이 해당국 경제를 훼손하는 현상을 말한다. 모든 선출직은 경제성장을 도모해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기본 책무다.

이런 가운데 PD의 상징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다. 최근처럼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질서가 재현되는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특정국 최고 통수권자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은 경제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집권 1기 때 베네수엘라, 이란, 튀르키예 같은 국가에서 겪었듯이 국제적 마찰을 빚으면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실물경기는 침체된다.

이미 세계경제 질서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공존하는 ‘차이메리카’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신냉전 2.0’ ▲지역 혹은 국가별로 분화하는 ‘분권화’ ▲모두 조화하는 ’다자주의’ ▲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 어느 하나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해관계에 따라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이 반복되는 커다란 줄기 속에 다른 국가는 자국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는 중층적 ‘분권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세계경제 질서는 선진 7개국(G7)이 주도해 구축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젤리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글로벌 증시의 향방은
세계경제 중심축이 무너지면 혼돈과 무질서만 남는다. 이런 여건에서 개인적으로 야망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다. 당연히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꿈을 꿀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 집권 2기 경제정책을 집대성한 ‘프로젝트 2025’에는 ‘세계합중국(United States of World, USW)’ 구상이 주목을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한 미국’과 ‘트럼프의 야망’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전례인 유럽 통합 방식을 토대로 MAGA 적용 대상을 모든 국가로 확대하고, 세계화폐통합(WMU), 세계정치통합(EPU), 세계사회통합(WSU) 순으로 추진하면 ‘미국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넘어 USW 달성이 가능하다.

불꽃 장세 vs 거품 붕괴

트럼프의 세계 지배 구상이 본격화되는 첫해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선거, 전쟁, 이상기후, 탄핵 등으로 점철된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미국과 한국으로 요약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중 달러화로 환산된 대표 지수 상승률을 보면 미국이 1위, 한국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미국 증시는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로 주가가 크게 오른 1990년대 후반의 골디락스 장세를 뛰어넘어 ‘불꽃 장세(fire market)’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지난해 11월 초 이후에는 테슬라, 팔란티어 같은 관련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한 단계 더 뛰어오르는 ‘폭등 장세(sky rocketing market)’까지 나타났다.
트럼프 2기, 글로벌 증시의 향방은
성장률과 정책(기준)금리가 각각 5∽6%대였던 1990년대 후반에 훨씬 못 미치는 2%대, 4%대인데도 미국 주가가 당시보다 더 오른 것은 글로벌 자금이 미국 증시로 집중 유입됐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10월 말까지 글로벌 자금의 60% 정도가 미국으로 유입됐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는 그 비중이 70%까지 높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집중적으로 유입된 때는 국제금리 간 ‘대발산(Great Divergence, GD)’이 나타나던 시기와 맞물린다. GD가 처음 나타난 1990년대 후반 이후 상황을 보면 미국 중앙은행(Fed)은 1995년 이후 불과 1년 만에 정책 금리를 3.75%에서 6%까지 올렸다. 같은 기간 중 독일의 분데스방크는 5%에서 4.5%로 내렸다.

정책 금리 간 GD로 ‘루빈 독트린 시대’라 불릴 만큼 강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1995년 4월 달러 가치 부양을 위한 역플라자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79엔에서 148엔까지 급등했다. 고금리·강달러로 자금 이탈이 집중된 신흥국은 1994년 중남미 외채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부도까지 이어지는 ‘그린스펀·루빈 쇼크’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각국 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내리는 피벗을 추진했다. 1990년대 후반 상황이라면 정책 금리 간 GD로 미국으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꼬리(신흥국 중앙은행)가 몸통(선진국 중앙은행)을 뒤흔드는 웩더독 피벗 추진 과정에서 Fed가 뒤늦게 참여한 시기까지 정책 금리 간 차이로 미국으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Fed가 피벗을 추진한 이후 나타나고 있는 ‘수수께끼(conundrum)’ 현상이다. 지난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정책 금리가 1%p 내렸지만, 10년물 국채금리는 1% 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중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국채금리는 하락했다. 1990년대와 달리 시장금리 간 GD가 발생하고 있다.

달러 가치도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미국 외 국가는 연일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외화만 소진할 뿐이다. 일본 대장성은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엔·달러 환율은 개입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내부 문제까지 겹친 원·달러 환율은 1차 방어선 1400원, 2차 방어선이 연속적으로 뚫리면서 1500원대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트럼프 집권 2기에도 시장금리 간 GD는 지속될 확률이 높다. 감세와 뉴딜정책, 고관세와 불법 이민 색출 등으로 총수요와 총공급 양면에서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채 수급 면에서 연방 부채 상한 폐지를 놓고 이미 의회와 격돌을 벌일 만큼 재정적자와 국가부도 우려로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펀더멘털과 정책 금리를 뛰어넘는 과도한 글로벌 자금 유입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은 거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빅테크 주가는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종전의 주가 평가 잣대로 고평가된 지 오래됐다. 매출액 대비 주가 비율(PSR), 무형자산 대비 주가 비율(PPR), 꿈 대비 주가 비율(PDR) 등 새로운 주가 평가 잣대로 미래 잠재 가치가 높게 평가되면서 빅테크 주의 상승세가 연장되고 있다.
트럼프 2기, 글로벌 증시의 향방은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 미국 증시는 ‘해로드-도마의 칼날 성장 이론’으로 비유된다. 작두를 타는 무속인이 칼날 위에서 떨어지면 큰 상처가 나듯이 ‘불꽃 장세’와 ‘거품 붕괴’ 간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2018년에도 국내 증권사가 마치 유행처럼 해외 상업용 부동산투자에 주력한 것이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는 커다란 손실로 이어진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글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