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가슴 벅찬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시작한다. 광활한 산과 바다, 신비로운 문명의 흔적을 둘러보며, 진행자는 경탄의 표정을 짓는다. 이제 느릿느릿 걸으며 시청자들에게 엄숙한 질문을 던질 차례다.
“이 장엄한 풍경들을 보면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건축 허가는 누가 내준 걸까요.”
넷플릭스 '컹크의 색다른 인생 이야기'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넷플릭스가 이달 공개한 <컹크의 색다른 인생 이야기>는 정통 다큐멘터리로 가장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다큐 제작자 겸 진행자 필로미나 컹크(다이앤 모건)는 시종일관 진지한 말투로 인생이라던가 과학, 철학을 논하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농담에 가깝다. 그 또한 진짜 제작자가 아니라 연기자다.
진짜인 것은 오프닝에 뜬 영국 방송사 BBC의 로고다. 영국 코미디의 팬이라면, BBC의 전작이자, 모큐멘터리(Mockumentary) 드라마의 명작인 <디 오피스>(2001)를 기억할 것이다. 직장 내 에피소드 같은 평범한 상황들이 다큐 형식을 통해 색다른 웃음을 자아냈다는 것도.
<컹크의 색다른 인생 이야기>에서 진행자 필로미나 컹크는 인류가 천착해온 철학적 질문들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의 ‘엉덩이를 깊숙이 찌르는 듯한 질문’은 인터뷰 장면에서 특히 효과가 크다. 브라이언 콕스 맨체스터대학 물리학 교수나, 노벨생리학상 수상자인 폴 너스 등의 저명한 석학들이 당황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교수들은 컹크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받은 교수들이 답변을 고민하는 동안, 컹크는 그저 인터뷰 장소에 대해 투덜거릴 뿐이다. 인간 모두가 가진 'D 또는 A'의 정체, 유명 화가의 팔 길이와 팔뚝 힘이 화제가 되고, 교수들도 이때쯤에는 완전히 ‘낚여서’ 맥락 없는 말을 지껄이게 된다.
<컹크의 색다른 인생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지적 산물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무려 BBC 다큐멘터리의 그럴듯한 진행자가 사실 ‘멍청이’라면? 컹크는 게다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면서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오늘날 유튜브와 인플루언서 등에 의해 퍼지는 미신과 가짜 지식들 또한 풍자 거리다. 컹크의 뻔뻔한 태도는 진실과 거짓을 경계 짓기 어려워진 오늘날을 대변한다. 제작사인 BBC가 스스로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도 있다. 도덕적 논란 속에서도 문제적 인물을 섭외하고, 협찬과 광고를 떳떳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그러하다.
5부작 시리즈로 선보였던 <컹크의 색다른 자연 이야기>(2022)를 본 시청자라면, 이번 후속작이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가 하품할 것 같은 순간에 배려삼아 틀어주는 뮤직비디오 역시 동일하다. 웃음의 공식 또한 반복되면 그 힘을 잃는다.
여러모로 터무니없고 무가치한 개그로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식거리다가 나름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순간도 있다. 예컨대 ‘우리 영혼을 지켜보면 뭐가 보일까’와 같은 질문들. <컹크의 색다른 인생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