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셜 트럼프가 촉발한 DEX
코인베이스 등 거래소 안거치고
개인간 거래 비중 16.7%로 껑충
月거래액 5년새 8538배로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주도
팬케이크스와프, 거래량 규모 1위
유니스와프, 기업가치 2.3조
국내는 엄격한 규제로 '불모지'
韓 투자자들 해외 DEX로 이동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의 ‘탈중앙화’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코인베이스 등 거래소(CEX·Centralized Exchange)를 거치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개인 간 거래(DEX·Decentralized Exchange) 비중이 2020년 0.004%에서 올해 1월 기준 16.7%로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DEX가 허용되지 않아 밈코인(유행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는 암호화폐) 등을 구매하려는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이은현 기자
11일 암호화폐 조사업체 더블록 등에 따르면 DEX 방식의 거래 비중은 1년 전(8.57%)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월간 DEX 거래액은 지난달 5000억달러(약 726조7000억원)를 처음 돌파했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도 DEX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15~21일에만 8조원이 해외 DEX용으로 송금된 것으로 추산된다.
DEX는 신원 인증 없이 거래가 가능하고 정부 등의 개입이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탈중앙화 금융을 주창하는 대표적 기업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DEX 시장에 상장한 밈코인인 ‘오피셜 트럼프’는 0.18달러에서 시작해 이틀 만에 408배 급등했다.
◇코인 머니 대이동 일어나나
지난달 19일 글로벌 암호화폐 탈중앙화거래의 하루 거래액이 548억4000만달러(약 79조5783억원)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2.8배 급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행한 오피셜 트럼프를 사고팔려는 투자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오피셜 트럼프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20일 43억2000만달러(약 6조2436억원)로 불어나기도 했다.
암호화폐 투자가 빠르게 탈중앙화로 이동하면서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한 투자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가 업비트, 바이낸스 등 중앙화거래에서 DEX로 대거 움직이고 있다. 암호화폐 솔라나를 기반으로 한 개인 간 거래 레이디움, 암호화폐 ‘지갑’으로 돈을 버는 팬텀 등 관련 스타트업이 글로벌 암호화폐 투자 환경을 혁신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1일 블록체인 분석 서비스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글로벌 DEX 월간 거래 규모는 1월 기준으로 2020년 6591만달러(약 956억원)에서 올해 5627억8800만달러(약 816조5491억원)로 5년 새 8538배 급증했다. DEX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운영되는 암호화폐 거래를 의미한다. 기존의 CEX와 달리 중개자 없이 스마트 계약(미리 프로그래밍된 내용)을 활용해 투자자가 직접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CEX는 거래소가 투자자 자산을 보관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요구하지만 DEX에선 투자자의 개인 암호화폐 지갑으로 자산을 직접 관리한다.
DEX는 기존 거래소의 여러 한계 때문에 등장했다. 거래소 해킹, 암호화폐 출금 제한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블록체인 개발 취지인 탈중앙화와 익명성을 확보하려는 것도 DEX에 투자자가 몰리는 이유다. 무엇보다 CEX가 거래소 기준에 따라 암호화폐를 상장하는 것과 달리 DEX에선 새로운 프로젝트와 시가총액이 작은 코인을 쉽게 거래할 수 있다. 밈코인 오피셜 트럼프가 출시되자마자 거래 종목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가격 급등락이 심하기 때문에 투기성 자금이 몰린다는 비판도 받는다. 미국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데이터 분석가 다렌 마쓰오카는 “올해 주목해야 할 암호화폐 관련 지표는 DEX 거래량”이라며 “탈중앙 금융 생태계가 발전하면서 DEX 비중은 꾸준히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유니콘이 연 시장
글로벌 DEX 시장은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이끌고 있다. 거래량 규모로 1위 업체인 팬케이크스와프는 2020년에 나왔다.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높은 거래 비용과 낮은 처리 속도를 해결하기 위해 출시됐다. 창업자가 익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2년 세계 최대 CEX인 바이낸스의 투자를 받았다. 최근 역대 최고 거래액을 달성한 레이디움은 ‘알파레이’라는 익명의 창업자가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밈코인이 인기를 끌어 거래 규모가 크게 늘었다.
레이디움은 트럼프 대통령 밈코인 출시 후 24시간 동안 2507만달러(약 363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알라메다리서치, 팬테라캐피털, 드래건플라이캐피털, 점프크립토 등 암호화폐 전문 투자사들이 초기 레이디움에 투자했다. 유니스와프는 DEX의 ‘원조’ 같은 거래소다. 개발자 출신 헤이든 애덤스 CEO가 2018년 설립했다. a16z, 패러다임, 유니언스퀘어벤처스 등 미국 대형 VC가 투자했다. 유니스와프의 기업가치는 2022년 16억달러(약 2조3232억원)를 넘어섰다.
DEX가 인기를 끌자 암호화폐 지갑 스타트업도 주목받고 있다. DEX를 이용하기 위해선 암호화폐 지갑이 필수다. 보통 투자자는 자신의 암호화폐 지갑을 DEX에 연동한 다음 암호화폐를 매매할 수 있다. 최근 밈코인 인기로 암호화폐 솔라나 기반 지갑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팬텀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MAU)는 1500만 명에 달했다. 팬텀에 보관된 암호화폐 가치는 250억달러(약 36조3050억원)다. 지난달 세쿼이아캐피털 등으로부터 1억5000만달러(약 2178억원)를 추가로 투자받았다. 기업가치는 30억달러(약 4조3566억원)로 불어났다.
이용자가 가장 많은 암호화폐 지갑은 메타마스크다.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업체 컨센시스가 2016년 출시했다. 누적 이용자가 1억 명이 넘는다. 메타마스크는 DEX보다는 대체불가능토큰(NFT),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DeFi) 등의 인기로 성장했다. 연간 수수료 수입은 2022년 기준 2억5200만달러(약 3659억원)였다. 기업가치는 70억달러(약 10조1654억원)를 넘어섰다.
◇국내에선 성장 더딘 이유
국내에선 DEX 생태계가 아직 초기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암호화폐 클레이튼(현 가이아) 기반의 DEX인 클레이스와프 운영사 오지스, 암호화폐 지갑 ‘페이스 월렛’ 개발사 해치랩스 등 일부 스타트업이 국내 관련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용자는 많지 않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는 주로 업비트, 빗썸 등 CEX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을 투자자 보호로 접근하는 터라 국내에선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DEX 기업과 암호화폐 지갑 사업자가 반드시 취득해야 할 대주주 심사 통과 등의 요건을 까다롭게 해놨다. 고객 예치금 분리 보관, 보험 가입 등 의무 조항도 사업자에 부담이다.
암호화폐업계 관계자는 “돈이 되는 곳에 투자자는 몰리게 마련이고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는 이미 해외 DEX로 이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블록체인 분석 서비스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지난달 15~21일 1주일 동안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5대 암호화폐거래소에서 거래된 USDT 등 스테이블코인(달러에 연동된 암호화폐) 거래액만 59억4700만달러(약 8조6362억원)였다. 1주일 전보다 60% 정도 늘었다. 업계에선 트럼프 밈코인 출시로 스테이블코인 매매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매한 스테이블코인을 해외 암호화폐 지갑으로 옮겨 DEX에서 트럼프 밈코인을 거래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