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여성 잡지를 넘어 사회 문제까지 다룬 '딤담돔(DIM DAM DOM)'
여성 권리와 개인 삶과 행복을 생각하게 만드는 데 공헌
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이다. 무속인들은 "올해는 성장, 지혜, 번영을 상징하는 해이며 새로운 시작과 도전 그리고 지혜로운 판단이 중요한 해"라고 한다. 2025년 기준으로 가장 최근의 을사년은 60년 전인 1965년이다.
1965년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위키피디아에 <1965년 프랑스>를 찾아보면 사진 4장이 올라와 있는데 그중 패션 사진 두 장, 음악 사진 한 장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은 미테랑 대통령의 선거 운동 사진이다. 이는 1965년이 프랑스 역사상 문화와 패션이 얼마나 중요한 해인지를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위키피디아 <1965년 프랑스> 페이지에 올라온 첫 번째 사진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André Courrèges)가 1965년 2월에 출시한 앙상블 15(L'ensemble 15) 사진이다. 쿠레주는 처음으로 여성 의상에 흰색을 사용했고, 최초로 미래 지향적인 소재인 비닐과 인조가죽 등을 사용하였으며, 우주복에서 영감을 얻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스페이스 룩과 미래주의 패션의 거장이 됐다.
앙드레 쿠레주(André Courrèges)의 <L'ensemble 15>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두 번째 사진은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이 디자인한 몬드리안 드레스(Mondrian Dress)이다. 몬드리안 드레스는 라운드 네크라인에 치마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심플한 원피스로 네덜란드 화가 몬드리안의 추상화에서 영감을 얻어 수평선, 수직선, 정방형, 장방형의 기하학적인 구성을 살려 표현하였다.
1965년은 프랑스 여성 권리 행사에 어쩌면 제일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1804년 나폴레옹 민법에 따라 여성의 법적 지위는, 1938년에 약간 수정되긴 했지만, 여자들은 결혼한 날부터 남편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여성은 남편의 허락 없이는 은행 계좌를 가질 권리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으며 남편은 아내의 재산과 직업 선택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1965년 초 남자 장관들로만 구성된 퐁피두 국무총리 정부는 여성의 법적 지위 개선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 후 여성의 법적 지위 개선 법안이 통과해 여성들도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남편의 허락 없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으며 법적으로는 남편이 더 이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1965년부터 여성은 자신의 재산을 직접 관리할 권리와 가계 유지나 자녀 교육에 필요한 일상적인 계약을 혼자 체결할 수도 있게 되었다.
혁신적이고 세련된 여성 TV 잡지 딤담돔
딤담돔(DIM DAM DOM)은 1965년부터 1971년까지 방송한 여성을 위한 획기적인 TV 프로그램이다. 여성 잡지 ELLE의 에디터인 데이지 드 갈라르(Daisy de Galard)가 제작했다. DIM DAM DOM은 매주 일요일(DIMANCHES) 진행되었고, 여성(DAMMES)들을 위한 그러나 남성(D’HOMMES)들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타이틀이다.
1965년 전에는 <라팜 셰젤> (The woman at home) 혹은 <뿌르 부 마담> (For you Madame) 같은 여성을 위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의식주와 아내의 역할 그리고 자녀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즉, 현모양처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하겠다.
1960년대는 1차, 2차 세계 대전을 뒤로하고 진정한 변화의 시대, 현대로 접어드는 시대가 되었다. 오랜 전쟁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과 여유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편안함보다는 자신을 꾸미고 각자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선택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아가던 여성의 의무와 역할에서 벗어나게 했다. 특히 딤담돔은 단순한 패션 여성 잡지가 아니고 사회 문제까지 다루어 여성들의 권리와 자신의 삶과 행복을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대가 열리게 하는 데 공헌했다.
기존의 패션 공식이 뒤집힌 1960년대
사회적 배경과 프랑스의 분위기는 경제적 발전 및 성장기의 과정을 거쳐 풍요로운 60년대를 맞게 된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보편화되고 여성들의 가사 생활을 도와주는 전기세탁기, 전기냉장고 등의 사용으로 생활 수준이 윤택해졌다. 무엇보다도 유급휴가 정책 도입으로 프랑스의 바캉스 문화가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권의 개념이 구체화되고 대중화된 시기이기도 하며 미국에서 시작된 히피 문화가 1960년대 중반에 프랑스에 도착하여 문화적, 정치적, 성적 자유주의가 확산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예예(YeYe)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고 전쟁과 경제 위기의 어둡고 무거웠던 과거는 접어버리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진정한 해방과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는 출산율을 높이고 소비를 촉진해 경제가 좋아지게 만들었다.
딤담돔의 슈퍼스타인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는 샹송뿐만 아니라 여성 잡지의 대표적인 패셔니스타로 손꼽히고,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는 1960~1970년대 섹스 심벌(Sex symbol)로 떠올랐다. 1960년대 이전 여자 배우나 가수들과는 달리 개성도 뚜렷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연예계 활동과 사생활을 자신 있게 노출하였다.
1960년대 초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Mary Quant)는 미니스커트를 처음 소개하고 프랑스에서도 쿠레주(Courreges)가 1965년 봄여름 컬렉션에 미니스커트를 대표 피스로 소개하여 획기적인 패션 혁명을 일으켰다. 미니스커트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젊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쿠레주,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그리고 파코라반(Paco Rabanne)은 1960년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트랜드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 : Atomic Age/Future fashion)를 탄생시켰다.
60년 만에 을사년도 다시 돌아오고 유행도 다시 돌아와 샤넬, 셀린느, 쿠레주 등 럭셔리 명품 브랜드에서 1960년대 프렌치 레트로 스타일을 테마로 2024/25년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활기차고 희망이 넘치던 1965년처럼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 2025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