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맞추는 AI 알고리즘, 되려 시장 왜곡할 수도
자사 상품 우대는 독점 기업이 가격 인상하는 셈
AI가 경쟁사 모방하면 사실상 담합, 新 합의 필요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쿠팡, 그리고 당신의 선택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쇼핑몰 1위 업체인 쿠팡에 대해 16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쿠팡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쿠팡이 자사 상품을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조작해 소비자의 선택을 은밀하게 유도했다는 혐의다. 쿠팡의 새벽 배송을 애용하는 소비자들로서는 전혀 남 일 같지 않은 느낌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에 겹겹이 둘러싸여 산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알고리즘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늘의 추천 상품', '당신에게 맞는 콘텐츠', '최적의 경로 안내'와 같은 친절한 메시지들은 마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AI와 알고리즘을 신뢰하고, 그 편리함에 기대어 선택의 순간들을 그들에게 완전히 맡겨버린다. AI와 알고리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아날로그 세대의 키오스크 포비아(Kiosk Phobia)처럼 낙오와 부적응의 상징으로 비칠 날이 머지않았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지능정보사회 이용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포털 사이트 이용자의 68.9%, 유튜브 이용자의 71.2%가 알고리즘 추천 서비스가 자신의 취향에 잘 맞는다고 응답했다. 이미 우리 주위 열에 일곱은 알고리즘으로 자신의 선택을 대신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쿠팡 사건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알고리즘은 과연 중립적인 존재일까? 우리의 선택이 혹시 타인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김범준 기자
보이지 않는 손, 알고리즘의 두 얼굴
AI 알고리즘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마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작용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시장 경쟁을 왜곡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하여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자사 상품을 우선 노출하거나 경쟁사 상품을 배제할 수 있다.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플랫폼의 의도에 따라 제한된 선택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마트에서 특정 상품만 진열대에 놓고 나머지는 창고에 숨겨두는 것과 같다.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 조작은 소비자의 의도와 다른 검색 결과를 노출해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하고 상품 선택에 관한 의사 결정권을 침해한다. 알고리즘이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하는 것이다.
알고리즘 조작은 시장 전체의 효율성도 저해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이 최고의 상품이 아님에도 자사 상품을 우선 노출하는 것은 알고리즘 검색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낮추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경쟁의 제한과 혁신의 제한으로 이어져 시장의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독점 기업이 임의로 가격을 인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알고리즘, 투명성을 요구하다
소비자 단체들은 온라인 플랫폼 알고리즘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 역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등을 준비하며 알고리즘 규제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들은 '알고리즘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알고리즘을 통한 정보 제공 과정에서 허위나 기망 등의 위법 행위는 없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과연 그럴까?
소비자는 자신의 의사 결정을 알고리즘에 맡긴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소비자의 의도와 다른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다. 비록 소비자가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온라인 플랫폼이 자사 상품부터 우선 노출하는 것은 소비자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물론 사기업인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인터넷망 중립성과 같은 알고리즘 중립성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알고리즘을 신뢰한 소비자로서는 자신이 무엇을 기준으로 정보를 받는지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AI 시대, 새로운 경쟁법의 모색
AI와 알고리즘의 발전은 경쟁법에도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최근에는 AI 알고리즘이 경쟁사의 가격 책정 등을 분석해 사업 전략을 모방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는 전통적인 담합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경쟁 제한 행위다.
AI가 경쟁사의 행위를 예측하고 선도사업자의 행위를 모방하는 경우, 경쟁사업자들끼리 굳이 모여 담합을 모의하지 않더라도 담합과 유사한 결과를 낳게 된다. 심지어 경쟁사업자끼리 동일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동일한 로직에 따라 더 간단하게 담합과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들이 합의에 기초한 전통적인 담합이론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AI는 경쟁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경쟁법 이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적 접근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선택, 우리의 미래
AI 알고리즘은 우리 삶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이면에 숨은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그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선택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예가 될 것인가?
이인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I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제27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남부지법,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 23년간 법원에서 경력을 쌓았다. 법원행정처 형사심의관, 공정거래 판결작성실무 집필위원 등도 역임했다. 2021년 법무법인 광장에서 공정거래그룹장을 맡아 공정거래를 비롯한 각종 기업 관련 송무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현재 법무법인 YK의 대표변호사이자 공정거래그룹장으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