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모험자본’으로 불리는 벤처캐피털(VC)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에만 돈을 넣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금 절반이 창업한 지 7년이 넘은 기업에 쏠렸다. 신생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 키워낸다는 벤처 투자의 목적이 퇴색하고 있다.

'모험' 사라진 모험 자본…절반이 '중고 신인'에 베팅
2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 3년 이내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자금은 2조2243억원으로 전년보다 17% 줄었다. 전체 벤처투자액 중 창업 3년 이내(초기) 비중은 2022년 26.9%에서 2024년 18.6%로 떨어졌다. 창업 7년이 넘은(후기) 스타트업 투자는 전년 대비 23.3% 급증한 6조3663억원에 달했다. 비중도 2022년 38.7%에서 53.3%로 뛰어올랐다. 김봉덕 중기부 벤처정책관은 “창업 초기에 투자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업공개(IPO)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수익률은 낮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후기 기업에 벤처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석 단계 신생기업을 발굴해 투자해야 할 VC들이 모험을 포기하고 안전을 택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혹한기에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면 추가 투자 유치도 어렵고 리스크가 크다”며 “IPO를 앞둔 기업의 투자 유치에 주요 VC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역할의 액셀러레이터(AC)들마저 이 같은 관행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에만 소풍벤처스를 비롯해 에트리홀딩스, 메인스트리트벤처스, 베드록벤처스, 미래과학지주, 젠티움파트너스 등 AC 여섯 곳이 중·후기 투자가 가능한 VC 자격을 새롭게 땄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 투자 시장 분위기가 악화하면서 초기 투자를 담당해온 AC들마저 전략을 바꿨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야 할 시드(극초기) 단계에서도 VC들은 ‘중고 신인’만 찾는다. 한두 차례 창업에 성공해 회수 경험이 있는 창업자가 등장해야 투자자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창업자의 이름값과 네트워크가 없으면 투자를 받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인재들은 창업보다는 대기업 취업을 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학창 시절 ‘S급 개발자’ 소리를 듣던 젊은 인재들이 스타트업 창업 대신 빅테크 취업을 한다”며 “아이디어가 좋은 스타트업도 요즘 같은 상황에선 살아남기 힘들다는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