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시대에는 3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율리우스력과 현재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 채택되기 전까지 3월은 정월이었고, 춘분이 새해의 첫날이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3월은 곡식의 종자를 심는 달이기 때문이다. 3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마치(March)’도 로마신화에서 농업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기도 한 마르스(Mars)에서 따온 명칭이다. 로마에서는 자신들의 신화 속에서 제우스 격인 유피테르보다 마르스를 더 숭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최고의 권위보다는 삶의 기반이자 근간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씨앗을 심는 건 농사에서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도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을 충실히 사는 작지만 큰 행위이다. 그래서 3월은 중요하다. 발레에서도 3월과 같은 훈련 동작이 있다.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고, 화려한 동작들을 구사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씨앗을 심고 기초를 탄탄하게 만드는 핵심 동작 둘, 플리에(plié)와 탕뒤(tendu)이다. 턴아웃 상태로 무릎을 구부려서 내려갔다 올라가는 플리에는 하늘로 향해 날아오를 수 있게 만드는 근원이다. 화살을 멀리 날아가게 만들기 위해 활시위를 뒤로 힘껏 당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탕뒤는 어떤가. 발레에서는 다리를 힘차게 차거나 들어 올리는 역동적이고 확장된 움직임을 큰 동작, ‘그랑(grand)’이라고 부르는데 그랑 동작들을 하기 위해서 탕뒤로 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오죽하면 발레에서는 ‘모든 것은 탕뒤에서 시작되는가?(Everything starts with a tendu?)’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탕뒤는 프랑스어로 내밀다, 펴지다, 팽팽하게 당겨지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발을 앞, 옆, 뒤로 내미는 동작인데 이때 발등을 둥글게 아치를 만들며 최대한 밀어낸다.
탕뒤를 할 때 발 모양 / 출처. Brittanyhaws.com
중요한 건 그 시작점이 발이 아니라 고관절이라는 점이다. 턴아웃 한 고관절부터 무릎과 발목, 발끝까지 동작의 모양뿐 아니라 근력과 에너지도 이어져야 하는 게 핵심이자 어려운 부분이다. 즉, 발을 내밀고 다시 들어올 때 고관절에서부터 그 팽팽한 에너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훈련한 힘이 있어야 이후에 강하게 다리를 차올리는 동작을 할 수 있게 된다. 탕뒤를 할 때 처음에는 발끝을 모아서 칼날처럼 만드는 푸앵트(포인트) 모양을 만들지만, 이후에는 발가락을 움직여 땅을 밟고 다시 푸앵트하는 것을 반복해서 훈련해야 한다. 이때 발등의 힘과 다리 전체의 힘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런 훈련을 하는 건 발가락으로 땅을 밀어 올려 차면서 그랑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서이다. 포인트슈즈를 신을 경우 슈즈의 딱딱하고 긴 앞코까지 컨트롤하면서 발등을 밀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연습 슈즈를 신었을 때보다 탕뒤를 제대로 하기가 더 어렵다.
뒤로 탕뒤를 하는 탕뒤 데리에르(tendu derrière) / 출처. BalletBody
앞으로 탕뒤를 하는 탕뒤 드방(tendu devant) / 출처. School of American Ballet
탕뒤를 통해 잘 훈련한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어떤 춤을 보여줄 수 있을까. 발레 <돈키호테(Don Quixote, 1869)> 1막의 피날레에서 여주인공 키트리가 보여주는 독무는 탕뒤가 어떤 폭발적인 에너지와 동작을 만들어내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요란한 캐스터네츠의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키트리는 우선 다리를 힘차게 옆으로 차올리며 '6시 포즈'를 보여주는데 크게 차올린다고 그랑 바트망(grand battement)이라고 부른다. 탕뒤를 통해 발가락으로 바닥을 미는 힘이 훈련돼야 이 그랑 동작이 가능하다. 이후 <돈키호테>의 시그니처로 불리는 ‘플리세츠카야 점프(Plisetskaya head-kick)’를 선보인다.
무대 위에 몸을 던져 180도나 그 이상으로 다리를 앞뒤로 찢어서 수평을 이루며 날아가는 동작인 그랑 주테(grand jeté)는 폭발적인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동작으로 발레 작품 안에 종종 등장한다. <돈키호테>에서 키트리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뒷다리는 조금 구부려 머리 뒤로 높이 들며 사선으로 그랑 주테를 선보이는데, 이 동작이 플리세츠카야 점프로 플리세츠카야 주테라고도 불린다. 동작의 이름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무용수 마야 플리세츠카야(Maya Plisetskaya, 1925~2015)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이 동작 역시 탕뒤의 훈련 없이는 나올 수 없다. 즉, 탕뒤는 발레의 모든 폭발적이고 확장된 동작의 뿌리인 것이다.
<돈키호테> 1막, 그랑 바트망을 선보이는 마리아넬라 누네즈 / 출처. Royal Ballet
플리에와 탕뒤는 발레를 처음 배울 때는 가장 보잘것 없는 동작, 쉬운 동작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중요한 동작인 것을 깨닫게 되고, 나중에는 가장 어려운 동작이란 걸 알게 된다. 기초를 다지는 동작, 즉 씨앗을 심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운동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플리에와 탕뒤로 훈련하고 다지지 않으면 발레의 동작들은 결코 깨끗하고 정확하게 구사될 수 없다. 발레가 어려운 것은 곡예에 가까운 기술적 동작들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손끝 하나, 발끝 하나, 시선과 각도까지 정확하고 깔끔한 라인을 요구하고, 어떤 동작을 구사하는 데 있어서 기본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씨앗은 가능성이다. 씨앗을 심는 3월은 그래서 가능성을 심는 달이기도 하다. 가을에 무엇을 맞이하게 될지 기대하게 되는 달이 3월이다. 발레의 탕뒤가 발가락 하나하나로 땅을 밟고, 땅을 밀고, 그래서 그랑의 동작들까지 모두 만들어내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하는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작은 노력이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을 믿는다. 그러니까 오늘도 바닥에서 하늘로 날아오를 날을 꿈꾸며 탕뒤, 또 탕뒤, 그리고 또 탕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