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외교…별명 '얼음여왕'
경제 뿌리 흔드는 美 관세에도
"플랜D까지 준비" 침착한 대응
트럼프도 "존경한다" 극찬
'보복' 표현 자제하며 몸 낮추고
협상 막판에만 직접 소통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멕시코와 캐나다 제품에 부과하는 25% 관세 상당 부분을 추가로 한 달 유예하기로 하면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을 극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셰인바움 대통령과 통화한 후 멕시코에 대한 추가 관세 유예 조치를 두고 “셰인바움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결정했다”고 트루스소셜에 적었다. 이어 “우리 관계는 매우 좋으며, 불법 이민과 펜타닐 유입을 중단하기 위해 국경 문제에 관해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셰인바움 대통령도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훌륭하고 존중이 담긴 통화를 했다”며 “양국 주권을 존중하는 틀 안에서 우리 노력과 협력이 전례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즉각 보복 대신 차분한 대응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멕시코는 큰 피해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그 후신인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을 통해 멕시코는 미국을 상대로 저렴한 상품을 무관세로 수출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을 겨냥한 기업이 앞다퉈 멕시코에 투자했고, 멕시코는 미국을 상대로 지난해 기준 약 1700억달러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멕시코 전체 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75%를 차지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25% 관세 부과 계획은 멕시코 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행위다.
기후과학자 출신으로 정치 경력이 길지 않은 셰인바움 대통령은 시종일관 ‘차가운 머리’와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어르고 달래는 데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말 ‘멕시코와 캐나다 제품에 25% 관세’를 처음 언급했을 때부터 지난달 1일 관세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했을 때와 지난 4일 실제 관세 부과 시행까지 “침착해야 한다”며 “평온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응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는 ‘즉각 보복하겠다’는 말은 삼갔다. 그 대신 “플랜 B, C, D가 있다”는 우회적 표현을 썼다.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즉각 보복’이 언론사 헤드라인에 오르지 않도록 표현한 것이다. 관세 부과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그는 “협상이 잘될 것이라고 낙관한다”고 거듭 말했다.
◇몸 낮추고 협상 낙관
감정적 대응을 피하고 협상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 대응하는 데 ‘시간차’를 두는 것도 셰인바움 대통령의 전략이다. 그는 4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가 발효된 후에도 즉각 보복을 공언하는 대신 “9일 관세 및 비관세 조치를 발표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고 끝까지 협상하기 위해서다.
협상의 가장 막판에 등장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고 마지막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도 그의 협상 기술이다. 그는 작년 12월, 올해 2월 3일, 이달 6일에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필요에 따라 번갈아 사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약 문제에 대한 멕시코의 노력과 성과를 설명했다. 병력 1만 명의 국경 배치를 강조하고, 국경에서 펜타닐 적발이 41.5% 감소한 점을 설득했다. 또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관계자 29명을 미국으로 넘겨주며 미국에 성의를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핵심 쟁점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멕시코에 대한 무기 밀매를 중단하도록 요구해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영국 BBC방송은 “셰인바움 대통령의 성공 비결은 불합리한 요구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백악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작년 대선 때 ‘얼음여왕’이라는 비판을 받은 셰인바움 대통령의 냉철한 스타일이 무역전쟁 국면에서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계산적이면서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을 다루는 데 적절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셰인바움 대통령을 “놀라운 여성”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현재 멕시코 국민의 셰인바움 대통령 지지율은 76~85%에 달한다.
다만 가디언은 “관세 위협만으로 멕시코의 경제성장 전망치가 하락했다”며 “멕시코는 앞으로 4년간 미국에 이민과 마약 문제의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처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