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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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개미를 바라보는 정부의 심경은 복잡하다. 밤잠 안 자고 해외주식을 사들인 서학개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서학개미가 벌어들인 해외주식 배당금이 60조원을 웃돈다. 하지만 이들이 외환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인식도 번지고 있다. 해외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렸다는 분석에서다.

정부는 서학개미가 키운 외환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여러 대책을 제시했다. 한국 기업들이 국내 시설투자를 위해 외화를 조달하는 길을 넓혀줄 계획이다. 서학개미가 한국 증시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대책도 내놨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김범석 기재부 1차관 주재로 외환건전성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외환수급 개선을 위한 추가방안’을 마련했다고 9일 발표했다. 불어난 서학개미로 커지는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서학개미는 해외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보유한 원화를 달러 등으로 환전하고, 그만큼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려는 국내 기업 유인을 확대하는 동시에 서학개미가 국내 증시로 복귀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외국계 금융회사가 원화 환전용 김치본드 매입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이 국내 설비투자를 위해 김치본드를 발행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국내 기업이 국내 설비투자를 위해 국내 은행 해외 점포에서 외화자금을 빌리는 것도 허용했다. 차입한 외화를 원화로 환전하려는 기업 수요를 늘려 원화 가치를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치본드·외화대출 금리는 통상 미국 국채 금리 등에 가산금리를 붙여 산출된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국채금리는 한국을 웃돈다. 그만큼 김치본드와 외화대출 조달금리가 한국 원화조달 금리보다 높고, 그만큼 조달 유인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달러 통화스왑(CRS·조달한 외화를 원화와 맞교환) 구조를 활용하면 달러차입 금리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는 만큼 달러 차입수요가 커질 것”이라며 “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 조달이 늘면서 기업 조달금리가 낮아지고, 외환시장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통화스왑은 달러를 담보로 원화를 빌릴 때 제공하는 금리다. 현재 원·달러 통화스왑은 마이너스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치본드로 자금을 조달할 기업은 은행들과 통화스왑 계약을 맺을 유인이 높다. 김치본드로 조달한 달러로 원화를 바꾸고 이 과정에서 조달금리는 CRS에 일부 가산금리를 적용받는다. 현재 CRS가 마이너스인 만큼 가산금리를 얹어도 한국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조달금리가 낮다는 평가가 많다.

서학개미들의 국내 투자 유도 방안도 제시됐다. 정부는 일반투자형 대비 비과세 한도가 2배 확대된 국내투자형 ISA에 편입되는 국내주식형펀드의 국내주식 의무투자비율 한도(40%)를 상향한다. 구체적 한도는 추후 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여기에 주주환원 촉진 세제를 비롯한 밸류업 세제지원도 재추진한다. 주주환원 증가금액(직전 3년 대비 5% 초과분)만큼 법인세 세액공제를 해주는 내용 등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 투자 비과세 신청 절차 등도 간소화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환 유출에 대해서는 규제가 많지 않은 반면에 외환 유입에 대해서는 대외건전성 관리를 위해 엄격하게 규제했다”며 “동일하지 않았던 외환 유출과 유입 규제 수위를 비슷하게 맞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