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땅서 태어나 美·獨·佛로…이 시대 '최다 레퍼토리' 지휘자
다음달 29년 만에 내한하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첫날인 4월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선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샤를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작품으로 전체 레퍼토리를 채운다. 생상스 ‘맹세에 의한 3개의 교향적 회화’ 중 3악장,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등을 차례로 들려준다. 30일 예술의전당에선 보다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공개한다. 프랑스 작곡가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 2번,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독일을 거쳐 프랑스 국립 악단을 이끌게 된 미국인. 2024년 파리올림픽 개막식 공연과 그래미상 수상을 나란히 경험한 거장. 지휘자 크리스티안 머첼라루(45·사진) 얘기다. 동시대 40대 지휘자 중 가장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지닌 그가 다음달 29일과 30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그를 서면으로 미리 만났다.

머첼라루의 유년 시절은 격동기였다. 1980년 그가 태어난 루마니아 서쪽 끝 도시인 ‘티미쇼아라’는 한국인에겐 생소하지만 루마니아에선 현대사를 결정지은 곳이다. 1989년 이 도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몰아낸 혁명의 발상지였다. 머첼라루는 독재자가 최후를 맞이하고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을 봤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와 해방의 행복감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경험한 시기”였다.

혁명과 함께 시작한 그의 10대였다. 음악가를 부모로 둔 머첼라루는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공산권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머첼라루가 음악에 푹 빠질 기회를 줬다. 교육 보장 차원에서 정부가 어린이들에게 무료 음악 교육을 제공한 것이다.

네 살배기 꼬맹이 머첼라루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하지만 이윽고 바이올린으로 진로를 틀었다. “들고 다니기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이 훨씬 작고 가볍다”는 아버지의 간명한 설득이 통했다. 1990년대 루마니아에선 해외 입양이 빈번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이었다. 머첼라루의 집은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미래의 가족과 미리 머물러보는 거처 역할을 했다. 이때 머첼라루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한 미국인 가족은 그에게 “항공비를 대줄 테니 미국 음악 명문 학교인 인터로켄에 지원하라”고 제안했다. 어렵게 비자를 따내 바이올린 전공으로 인터로켄 입학에 성공한 머첼라루는 마이애미대를 거쳐 휴스턴의 라이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다.

지휘 수업을 들은 건 순전히 학점을 받기 쉬워서였지만, 소리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에 점점 재미가 붙었다. 당시 바이올린 스승이던 세르지우 루카는 “넌 자존감도 높을 뿐 아니라 온갖 성격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도 겸비하고 있으니 지휘자가 딱”이라며 새로운 도전을 추천했다.

지휘자가 된 머첼라루의 여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그는 2011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맡는다. 하지만 이 일자리를 수락한 다음 날, 악단은 자금난으로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다. 3년간 부지휘자로서 고난을 감내하자 미국 음악계에서 머첼라루의 위상도 함께 올라갔다.

그는 2014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상주 지휘자에 임명되고 같은 해 솔티 지휘상을 받는다.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2015), 독일 쾰른 WDR 교향악단(2017),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2019) 등의 지휘를 맡으며 명성을 쌓았다. 2020년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니컬라 베네디티와 함께 녹음한 앨범인 ‘윈턴 마살리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래미상을 받는다. 같은 해 ONF의 음악감독직을 맡게 된 그는 2024년 파리올림픽 개막식도 맡았다.

“오케스트라는 저마다 다른 정체성이 있고 이는 소리와 그들이 지켜온 전통에 반영됩니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지점 중엔 바순이 있습니다. 바순은 프랑스에서 쓰이는 바송과 독일어권 악기인 파곳, 두 종류가 있는데 오늘날 대세는 풍부한 음질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파곳이죠. 바송은 음이 불균일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선명한 고음이 매력적이에요.”

이주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