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기관이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최대 45조7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18일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기후 위기가 더 이상 환경문제가 아닌 금융 리스크로 현실화되고 있으며, 국내 은행 및 보험사에 대한 정량적 미래가 부각된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은행과 금감원이 2024년부터 2100년까지 14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시나리오 분석 예측을 통해 도출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무대응 시나리오(기후변화와 관련해 대응하지 않음)에서부터 탄소중립 시나리오(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에 이르기까지 금융사의 예상 손실 규모를 숫자로 보여준 데서 의미 있는 분석 결과로 볼 수 있다.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손실 규모가 45조7000억 원에 달하는 반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1.5℃ 대응 시나리오에서는 26조9000억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18조8000억 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대응 시나리오에서 손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적으로 확대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반면 1.5℃ 대응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경 손실이 최고점에 달한 후 점차 감소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이는 초기에 어느 정도 비용이 들더라도 선제적 대응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은행의 경우 신용 손실(자금 대여자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실)이 전체 예상 손실의 95% 이상을 차지했고, 보험사는 시장 손실(보험료 청구에 따른 손실) 비중(생보사 76%, 손보사 48%)이 높은 결과를 보였다. 즉 기후변화에 따라 은행은 돈을 빌려줄 대상의 업종을 고려해야 하며,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 고객이 위치한 소재에 따라 보험금을 청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기후 대응 정책을 시행할 때는 철강·금속 가공 제품·시멘트 등 고탄소배출 제조업이 큰 타격을 입는 반면,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식료품·음식점·건설·부동산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업종이 더 큰 손실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구성 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방향성에 따라 업종별 리스크를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사의 대응 기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1.5℃ 대응 및 지연 대응 경로에서는 2050년을 전후로 국제 결제 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 충격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고, 무대응 경로에서는 2080년 이후 더욱 악화될 수 있다. 특히 무대응 시나리오에서 7개 은행이 2100년 자기자본비율이 기준 규제 비율을 하회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중기적 위험이 우려된다.
결국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자에게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기업과 금융사는 막대한 손실에 직면할 수 있지만, 선제적으로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고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금융사와 기업에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반(反)ESG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ESG 투자자들이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후 금융 관련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대응한다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기여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수익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