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비즘 무대 위에서 펼쳐진 사랑과 계급의 풍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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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풍자와 시각 예술의 만남, 감각적 해석으로 탄생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0일부터 나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0일부터 나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

‘당신의 사랑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의 2025 시즌 첫 작품 <피가로의 결혼>은 무대 미술과 조명 효과가 특히 두드러졌다.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이 볼거리를 풍성하게 해줬다. 1778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피에르 보마르셰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모차르트의 4막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겉으로는 18세기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직전의 사회 구조와 계급 갈등을 반영한 작품이다.
귀족 계급의 특권을 정면으로 비판한 원작은 한때 프랑스에서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모차르트와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는 이를 오페라로 각색하며 민감한 정치적 요소를 유쾌한 음악과 희극적 전개로 풀어냈다. 예를 들어, 1막에서 피가로와 수잔나가 '딩딩동동' 멜로디로 백작과 백작부인이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는 가사를 부르는 장면은 호출 벨을 연상케 하며 귀족과 평민의 종속 관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두 주인공의 재치와 기지가 향후 백작을 어떻게 골탕 먹일지를 암시하는 유쾌한 장면이다.

두 주인공이 노래할 때 생긴 그림자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하나였다가, 감정의 충돌이 고조되면 점차 멀어지며 시각적으로 감정과 정서의 거리감을 표현해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다 폰테 3부작(<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을 연출하며 명성을 얻은 뱅상 위게가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이번 연출에서는 피가로와 수잔나가 알마비바 백작을 '사장님'이라 부르며, 1930년대 프랑스 패션계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백작은 패션 기업의 CEO, 백작부인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등장한다.
연출자는 이번 연출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국립오페라단을 통해 밝혔지만, 실제 작품을 보면 유사성이 뚜렷하지 않아 크게 공감이 되진 않았다. 가난한 기택 가족이 위장취업으로 상류층 집에 침투하는 <기생충>의 설정과, 피가로가 귀족인 백작의 욕망에 맞서 수잔나를 지키기 위해 활약하는 오페라의 접점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이번 공연의 가장 아쉬운 점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특성과 음향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연출 요소였다. 1막 피가로의 아리아에서는 구두를 장갑처럼 손에 끼고 바닥을 두드리는 장면의 소음이 음악을 방해했고, 'Non più andrai'(더 이상 날지 못하리)에서는 케루비노의 머리에 양동이를 씌우고 두드리는 연출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편지의 이중창(Canzonetta sull’aria)에서는 1층과 2층에서 노래하는 수잔나와 백작부인 사이의 거리와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맞지 않아 음향적으로 불균형을 느끼게 했다.

무대와 장면 전환의 중심에는 3시간 내내 판소리판의 고수처럼 장면을 이끈 국립심포니의 쳄발로(하프시코드) 연주가 있었다. 레치타티보 반주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조율하고, 장면 간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지휘를 맡은 다비드 라일란트는 서곡부터 빠른 템포로 이끌며 오페라 전체의 리듬을 빠르게 진행했지만, 오페라 무대에서 경험이 많은 국립심포니는 안정된 연주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오페라라는 장르 특성상 성악가들과의 긴밀한 음악적 호흡이 중요한 만큼, 한국의 오페라 전문 지휘자들이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다. 빠르게만 연주한 템포는 성악가들의 대사 전달력을 떨어뜨렸고, 호른의 음이탈과 한 남성 성악가의 고음이 때로는 생목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사랑, 의심, 용서, 화해 등 다양한 감정을 계급 간 시선의 차이로 풀어낸 국립오페라단의 <피가로의 결혼>은 남프랑스의 햇빛을 연상케 하는 무대 미술 효과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오페라의 서사를 더욱 부드럽고 몰입감 있게 전달한 작품이었다.
조동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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