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미로 찾기
사람이나 기업이나 가던 길이 막히면 우선 주변을 살피다 뒤돌아 새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죠. 길이 막힌 것이 아니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막막한 미로에 갇히는 순간이죠.

얼마 전 오십 줄이 넘은 언론사 후배들과 수년 만에 노래방을 갔더랬습니다. 그런데 후배들과 부른 노래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같은 달달한 발라드나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같은 흥겨운 노래가 아닌 김범수의 ‘지나간다’,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등 먹먹한 노래가 대부분이었죠. 막판에 ‘아버지’라는 제목의 노래는 두 곡(인순이, 싸이)이나 골라 불렀고요.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인데, 경제가 힘들고 고달픈 가운데 나이를 살뜰히 먹어가는 중년의 길 찾기는 그렇게나 힘들고 막막했나 봅니다.

요즘은 기업들도 길을 찾지 못해 힘겨워합니다. 국내 정치와 경제는 바닥 모를 추락이 이어지고, 트럼프발 관세 폭풍에 글로벌 공급망은 미로처럼 막혀 있으니까요. 포스코경영연구원의 ‘트럼프발 관세전쟁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관세 압박은 미국 제조업 부활(MAGA)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분석됩니다.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온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좀 더 다양한 압박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거죠.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선 중국의 광물 무기화는 또 다른 공급망 불안 요소입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부터 미국 관세에 맞서 희토류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희토류는 배터리, 반도체 등에 필수 원자재로 활용되는 만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겁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경우 지난 2월에 공개한 ‘ESG 규제 입법 수정안’(일명 옴니버스 패키지)으로 EU 공급망 실사지침상 실사의무 부과 대상을 종업원 수 1000명 이상 대기업까지 축소하고, 실사 범위도 1차 협력사까지 한정하도록 해 숨통을 다소 틔워주었습니다.

하지만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중국·EU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미로를 빠져나가야 하는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3월 ‘2025년도 대·중소기업 공급망 ESG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수출을 하거나 외국 기업과 거래할 때 요구되는 ESG 지표, 온실가스 산정 등 ESG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ESG 경영 전반의 과제를 발굴·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거죠.

〈한경ESG〉가 4월호 커버 스토리로 담은 ‘글로벌 공급망 미로 찾기’는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기업의 고민을 담은 리포트입니다. 기업들이 숨은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나침반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펼쳐 보입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