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인간은 한쪽에서는 더욱 큰 비행기와 대형 폭탄을 만들면서 또 다른 쪽에서는 살기 위해 조립식 주택을 만드는 걸까요? 매일 전쟁을 위해 수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쓰면서, 의료시설이나 예술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쓸 돈은 없다고 하는 건 왜일까요?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먹을 게 남아돌아 썩는 일도 있다는데, 왜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야 하는 걸까요?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요?"*

‘안네의 일기’ 중 일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은신처에 숨어있던 안네라는 한 사람은 하루하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일상에 대해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기에서는 한 소녀의 생에 대한 의지가 담긴 문장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소식들에서 우리는 민족 단위 혹은 특정 집단의 단위로 누가 희생되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단위를 풀어헤쳐 보면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개인의 삶과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
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전쟁이나 테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메모리얼(추모관)의 기억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현대 메모리얼에는 이름이나 사진의 나열과 같은 방식으로 희생된 개인에 대한 기념을 표현하는 방식이 등장했지만, 후대가 기억해야 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리되어 전달된다. 거기에 개인의 이야기는 지극히 제한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메모리얼이 2016년 3월, 폴란드의 작은 마을인 마르코바(Markowa)에 등장했다.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of Poles Saving Jews in World War II)’은 1944년 3월 24일에 울마 가족과 이들이 숨겨주고 있던 유대인들까지 총 17명을 나치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곳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구출한 사람들을 기리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지만, 여기에 한 가족을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지금까지의 메모리얼과는 다른 기념 방식을 보여준다.
울마(Ulma) 가족 / 사진출처. Museum of Poles Saving Jews 페이스북
울마(Ulma) 가족 / 사진출처. Museum of Poles Saving Jews 페이스북
이곳은 대표하는 기념 대상이 가족인 점, 그리고 메모리얼이 위치한 마을의 다른 집들이 형성하는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박공형태의 매스로 설계되었다. 이 박공형태는 내부까지 연계되어 방문객들이 계속 집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전시 공간은 현재 한 번에 들어올 수 있는 방문객 수를 30명으로 규제할 정도로 작아서 (117.3㎡) 집의 인상을 극대화한다. 여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들과 폴란드인들이 맺었던 관계에 대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침묵 대신 기억을 품은 울마 가족의 집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외부에서 바로 진입하게 되는 이 전시 공간의 중앙에는 울마 가족의 집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5X8m의 직육면체 박스로 형성된 이곳은 콘크리트와 무채색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던 밖의 전시 공간과는 달리 마루, 목재 가구 등을 사용하여 집의 느낌을 극대화하였다.

이곳은 울마 가족에게 집중된 전시 공간으로, 문서,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족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박스는 건물 파사드에 크게 형성되어 있는 유리 벽 (입구를 겸하는)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박스 외면에 새겨져 있는 가족의 이미지를 외부에서도 볼 수 있게 한다. 집 안에 가족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되어 기념해야 하는 대상에게 쉽게 이입할 수 있다.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은 이처럼 특정 집단을 기념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 희생된 한 ‘가족’에 집중한다. 그들을 기념하고 여기에서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가는, 지금까지의 메모리얼과는 반대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이런 미시적 접근은 규모는 작을지언정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메모리얼을 건립할 수 있게 하였고, 거대한 역사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에 대해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념을 가능하게 하였다.
울마(Ulma) 가족 / 사진출처. Museum of Poles Saving Jews 페이스북
울마(Ulma) 가족 / 사진출처. Museum of Poles Saving Jews 페이스북
밤이 되면 이 집(메모리얼)의 앞마당은 반짝거리는 불빛들로 가득찬다. 이 불빛은 유대인을 돕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폴란드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다. 마치 집을 향해 모여드는 것 같이 나열된 이름들을 보고 있으면 더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 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못다 한 삶에 대한 의지가 집을 찾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그리운 감정마저 느껴지는, 거대 역사 앞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러한 감정적 경험은 개인 앞에서만 가능한 공감을 통한 기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침묵 대신 기억을 품은 울마 가족의 집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울마 가족 추모 박물관(The Ulma family museum) / 사진출처. Nizio Design International 홈페이지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본문에서 사용한 안네의 일기는 2024년 문학사상에서 (홍경호 역) 출판된 책의 380쪽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