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심판 선고가 4일로 정해지면서 영남 산불 사태 이후 급물살을 타던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완전 중단됐다. 여당은 10조원 규모 ‘필수 추경’에 대해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지만 야당은 당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탄핵 선고 이후 정치권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추경 논의가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여야 모두 ‘조기 대선 모드’로 곧바로 들어서는 만큼 모멘텀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4일까지 추경 합의 어려울 듯

2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4일까지 정부가 제시한 10조원 규모 추경안의 합의 가능성을 모두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 입장에서는 여야가 합의 처리하겠다는 약속이 전제돼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에서 답을 안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예산을 자꾸 주장하고, 이 예산을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삭감된 올해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한 점을 겨냥한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전날 ‘윤 대통령 선고 전까지 추경은 차질이 불가피한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 (정부안이) 아직 제출도 안 됐다. 제출되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도 추경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윤 대통령 선고일 전에 여야가 만날 계획은 잡지 않았고, 잡기 쉽지 않다고 본다”며 “추경을 합의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했다.

◇선고 이후 모멘텀 잃나

추경 규모를 둘러싼 여야 신경전도 여전하다. 당정은 산불 피해 수습에 집중하기 위한 10조원 규모 ‘필수 추경’을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지역화폐 예산 등을 포함해 35조원 규모 ‘슈퍼추경’을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또 지난해 예산안 통과 시 삭감된 재난예비비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이미 편성한 예비비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예비비) 4조1000억원을 삭감 처리했다”며 “예산이 살아 있었다면 굳이 산불 추경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에서 연 민생경제 간담회에서 “(여당은) 마치 예산이 없어서 재난 극복을 못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며 “산불 재난 극복을 위해 추경 10조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라고 했다. 또 “경기가 나빠지면 정부가 재정을 지출해야 하고 코로나19 때도 그렇게 했다”며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그 얼마 안 되는 추경조차도 굳이 못 하겠다며 어려운 와중에도 정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불 사태를 계기로 살아난 추경의 불씨가 윤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완전히 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탄핵이 인용되거나 기각되는 시나리오 모두 정치권 대립은 더 격해질 수밖에 없다”며 “조기 대선으로 갈 경우 사실상 추경이 어려워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3일 국회에서 산불 피해와 관련해 정부와 당정협의회를 열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추경 논의가 진전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정소람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