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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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백신이 일반적으로 치매 예방에 일정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금까지 발표된 관련 연구 중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파스칼 겔드세처 교수팀은 3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서 영국 웨일스 지역의 79세 전후 노인 중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의 치매 위험을 7년간 추적한 결과, 접종자의 치매 위험이 미접종자보다 2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건강기록 기반의 이전 연구에서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이 백신 효과인지 백신 접종자들이 가진 건강 습관 등의 영향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2013년 영국 웨일스 지역에서 시행된 '대상포진 백신 프로그램' 덕분에 다른 요인들을 배제하고 백신이 치매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수 있는 '자연 임상실험' 환경이 형성됐다.

2013년 9월 1일 시작된 '대상포진 백신 프로그램'은 당시 79세인 사람은 누구나 1년간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했다. 78세는 다음 해부터 1년간 접종 자격이 주어지고, 80세가 된 사람은 접종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다른 요인들은 모두 같으면서 태어난 시기만 몇주 다른 28만2541명이 참가하는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백신 접종이 치매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 관찰할 수 있게 된 연구팀은 백신 접종 후 7년간 접종 그룹과 미접종 그룹의 건강을 비교했다. 그 결과, 접종 그룹의 대상포진 발생률이 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까지 86세와 87세 노인 8명 중 1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고,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들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20%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치매 예방 효과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컸다.

겔드세처 교수는 "이는 면역 반응의 성별 차이 또는 치매 발병 방식 때문일 수 있다"면서 "여성은 평균적으로 백신에 대한 항체 반응이 더 강하고 대상포진도 여성에서 더 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를 명백하게 보여준다"면서 "백신이 치매를 예방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비용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것이 백신의 면역체계 활성화 효과인지 아니면 바이러스 재활성화 억제 덕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이 효과가 인과관계인지 확인하고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히려면 무작위 임상시험 형태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자평했다.

한편, 대상포진은 통증을 동반한 발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에 의해 발생한다. 어린 시절 수두에 걸린 후 바이러스가 신경 세포에 잠복해 있다가 나이가 들거나 면역체계가 약해지면 재활성화돼 대상포진을 일으킨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