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조치를 9일(현지시간) 전격 유예하면서 세계는 관세 공포에서 한숨 돌리고 있다.

관세가 일단 시행된 후 13시간여만에 나온 이 발표에 대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고 했다. 시점이나 상황을 자세히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다가 순식간에 판을 뒤집겠다는 전략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통해 세계 각국과의 협상 지렛대 확보, 중국의 고립, 10% 기본관세 도입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이 “내 잘못”이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던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매니지먼트 창업자는 “트럼프가 훌륭하게 해냈다”면서 “교과서적인 ‘거래의 기술’”이라고 추어올렸다.

○“본능적 결정” vs “계획된 행동”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시장의 반응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해 왔고, 주말에도 플로리다로 날아가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 조치는 경제혁명이며 이길 것”이고 “버티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주가가 폭락한 데 이어 미국 국채시장이 흔들리자 180도 다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에게 “지난 며칠 동안” 관세 유예를 고려했으며, “아마 오늘 아침 일찍 결정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아침 폭스비즈니스에 출연해 관세가 경기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을 봤다면서 이런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 결정이 “본능적”이었다고도 했다.

베선트 장관 등 주변인의 설명은 다르다. 어느 정도는 계획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지난 수요일 상호관세 발표 후 여러 경로로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했고 시장의 흐름을 관찰하다가 갑작스레 카드를 내놓은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의사결정 패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문의 문구에 대해 법적인 검토는 없었고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처받을 필요가 없는 나라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 나라들은 모두 협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왼쪽)과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왼쪽)과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고립시켜…협상 여부는 미지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쉽게 협상장에 나서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20% 추가관세에 상호관세 34%를 더하고, 보복조치에 대해 50% 추가관세를 부른 것은 중국과의 관세 전쟁을 빠르게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날 21% 관세를 더해 중국산에 대한 관세율을 125%까지 끌어올렸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관세 때문에 세계가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우리는 그 반대의 효과를 봤다”면서 “전 세계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만을 고립시키고 나머지 세계를 협상장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고 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존심이 강한 남자”라면서 “중국은 합의하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뿐”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과도 합의하고, 모든 국가와 합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그가 취했던 전략과 유사하다.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관세전쟁을 계획하는 듯이 보였으나 최종 타깃은 중국이었다.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미·중 갈등 구도를 이어가면서 당근과 채찍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상대로 그가 보여준 ‘거래의 기술’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상호관세 발표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과의 신뢰를 ‘손쉽게 뒤집을 수 있는 대상’으로 격하시켰고, 근거가 빈약한 높은 관세율을 실제 적용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키웠다.

트럼프 정부는 제조업 진흥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관세율이 지나치게 큰 폭으로 오락가락하면서 미국 투자를 검토하고 있던 기업들조차 투자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이 상호관세 논의와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탓에 상대적인 투자 기회와 위험요인을 파악하기조차 힘들다고 기업들은 호소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예조치가 중국과 세계에 "나는 압력을 견딜 수가 없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면서 책이라면 '비명의 기술'이라는 제목이 달렸어야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신뢰가 연기와 같이 사라졌다"면서 금융시장의 혼란과 손바닥 뒤집듯하는 결정이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았음을 지적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