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 약세는 미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월가의 베테랑 투자전략가 에드 야데니는 15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미 국채 가격이 급락(국채 금리 급등)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한 데 대해 이같이 경고했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일 상호관세를 전격 유예한 결정적 배경으로 미 국채값 폭락이 꼽히는 가운데 시장에선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돌아왔다’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채권 자경단은 정부 정책이 시장 원리에 어긋날 때 투매 등을 통해 시장에 경고를 보내는 투자자라는 의미로, 야데니가 1983년 처음 쓴 말이다.

월가의 대표 리서치 회사인 야데니리서치의 대표인 그는 미국 국채 발행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흡수한 채권자경단의 힘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고 했다. 야데니 대표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월가의 베테랑 투자전략가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15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최근 달러 약세는 미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CNBC캡처
월가의 베테랑 투자전략가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15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최근 달러 약세는 미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CNBC캡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직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한때 연 4.5% 수준까지 뛰었습니다.

“올해 미 국채 금리가 연 4.25~4.75%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봤습니다. 문제는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금리가 급등한 것이죠. 채권 자경단이 돌아왔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습니다.”

▷채권 자경단은 정확히 누군가요.

“모든 채권 투자자가 곧 채권 자경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든 정부든 말이죠. 최근 워런 버핏도 주식을 대거 매도하고 (안전자산인 장기 국채 대신) 단기 국채에 투자했습니다. (장기 국채를 불신하는) 채권 자경단 같은 행동이죠.”

▷미국과의 갈등 때문에 달러 자산이 동결될까 봐 두려워하는 나라도 채권 자경단이 될 수 있겠군요.

“중국이 대만을 봉쇄하거나 침공한다면 미국은 중국 자산을 동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매도할 유인이 있지만 급히 팔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서서히 줄이는 중일 겁니다. 미국 국채는 아직 안전자산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최근 달러 약세는 미국이 일부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유로화와 엔화로 자산을 옮기고 있습니다.”

▷최근 국채값 급락 과정에서 채권 투매자들의 행동은 뭐라고 해석해야 합니까.

“관세는 적어도 몇 달간 물가를 자극할 겁니다. 즉 채권 투자자들은 경기 둔화보다 인플레이션에 더 초점을 두고 채권을 던졌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있습니까.

“올해 하반기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체감할지도 모릅니다. 인플레이션율은 상승하고, 성장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관세는 곧 세금이고, 세금은 경제를 둔화시킵니다. 단기적인 물가 상승 이후에는 오히려 디플레이션 압력도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채 시장 혼란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뭘까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2024년 9월부터 지금까지 연 1%포인트나 인하했습니다. 그럼에도 국채 금리가 오르면 정부로선 (정책이 원인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일이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기준금리보다 국채 금리 인하에 더 초점을 둔다고 한 것도 영향이 있다고 봅니까.

“물론입니다. 베선트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참모들은 ‘우리는 월스트리트보다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미국인의 60%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퇴직연금이나 뮤추얼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도 상당합니다.”

▷트럼프는 관세에 따른 일시적 고통을 감수하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합니다.

“미국인은 고통을 잘 참지 못합니다. 유권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경을 닫고, 물가를 낮추라고 표를 던진 것이지 주가 하락과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관세 정책을 하라고 뽑은 게 아닙니다.”

▷미국 재정 적자에 대한 채권시장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안’은 사실 기존 감세 조치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팁에 대한 세금 감면, 사회보장세 면제 등도 이야기되지만, 규모는 크지 않아요. 문제는 예산안이에요. 감세 연장을 포함한 예산안에서 지출 축소나 적자 감축이 신뢰성 있게 제시되지 않으면 채권 자경단은 분명히 반응할 겁니다.”

▷정부효율부의 예산 감축 노력도 있습니다.

“예산 삭감에 대해 트럼프 측은 2조달러 이야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1500억달러 정도뿐입니다. 결국 채권 자경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실질적이고 신뢰할 만한 계획이 없을 경우에도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관세 유예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좀 덜어지지 않을까요.

“중국에 이미 관세를 부과했고, 수입 물가가 올라가면서 물가도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는 다행히 연기됐지만 철강, 알루미늄, 중국산 제품(145%)에 대한 관세는 그대로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모두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공장을 지어라, 그러면 관세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강제하길 원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영구적인 관세를 필요로 합니다. 상호관세는 다른 나라가 관세를 낮추면 미국도 낮추겠다는 협상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트럼프 관세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모호합니다.”

▷일자리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손가락 하나 튕긴다고 갑자기 미국 전역에 공장이 생기고, 근로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 상황이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미국의 실업률은 4.1%입니다. 이는 실직 상태에서 일자리를 기다리는 노동자가 많다는 뜻이라기보다, 오히려 서비스업이나 다른 분야에서 이미 꽤 좋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관세의 목표가 다른 데 있다는 건가요.

“제 생각엔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구리, 희토류 같은 자원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거나 믿을 수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히 안보적으로 중요한 일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그런 국가안보 문제 해결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방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같은 동맹국에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기업이든 국가든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지고, 미국의 동맹국조차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죠. 결과적으로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무질서한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정책 불확실성이 낳은 혼란은무역 둔화, 더 나아가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Fed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나요.

“매우 낮다고 봅니다. Fed는 이번 (관세) 싸움에서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Fed는 손이 묶였습니다. 금리를 낮추면 인플레이션 대응에 실패할 수 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경기는 나빠집니다. 다만 그럴(동결할) 경우 책임은 정부에 돌릴 수 있는 구조죠.”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은 기업과 정부에 조언한다면.

“정면충돌보다는 협상을 택하라고 조언하겠습니다. 트럼프는 뉴욕 부동산업계 출신 협상가입니다. 소리 지르고 밀어붙이다가, 나중엔 웃으며 악수하고 끝나는 스타일이죠. 문제는 그걸 대중 앞에서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으로서 그 방식은 혼란만 키웁니다. 전통적인 외교 방식에 맞는 인물은 아닙니다.”

야데니 "정부의 정책 실패, 채권시장이 좌시 안해"

에드 야데니는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서치 회사로 꼽히는 야데니리서치 대표다. 미국 코넬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푸르덴셜-배치증권에서 수석 투자전략가로 일하던 1983년 7월 ‘머니 앤드 비즈니스 얼러트(Money & Business Alert)’라는 주간 리서치 보고서를 통해 ‘채권 자경단’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당시 그는 보고서에 “재정·통화당국이 경제를 규제하지 않으면, 채권자들이 대신한다”며 “경제는 신용 시장의 자경단에 의해 운영된다”고 썼다. 정부의 정책 실패를 채권 시장이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9~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2022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시절 국채값 폭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따른 미국 국채 시장 혼란 등을 통해 채권자경단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

뉴욕=박신영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