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야당·국민 반대 부딪혀
논의 열흘도 안돼 '없던 일'로
소비세 인하는 여전히 논란
“현금 몇만엔 한 번 받는 게 형편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돈 줄 테니 선거 때 찍어달라는 것 아닌가요.”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 국민 1인당 3만~5만엔(약 30만~50만원) 지급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일본인은 대부분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몇 년째 물가가 올라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건 맞지만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돈을 뿌리겠다는 건 선심성 아니냐”는 것이다. 예상 밖으로 싸늘한 여론에 놀란 자민당은 17일 ‘현금 살포’ 논의를 접기로 했다.
일본에서 전 국민 현금 지급안이 급부상한 건 지난 7일 닛케이지수가 7% 넘게 폭락한 직후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시 일본 경제가 충격받을 것이란 위기감이 확산했다. 8일 밤 자민당 2인자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과 기하라 세이지 선거대책위원장이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찾아 “빠르게 대응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이 방안을 제안했다.
자민당은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국민 1인당 실질소득이 연간 3만5000~4만엔가량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인당 3만~5만엔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에선 한술 더 떠 “10만엔이 좋다”는 말이 나왔다.
야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작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참패해 과반 달성에 실패한 자민·공명당이 추경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협력이 필수다. 하지만 제3야당이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국민민주당의 신바 가즈야 간사장이 “걷은 세금을 지원금으로 뿌리려면 처음부터 걷지 말라”고 비판했다.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 마에하라 세이지 공동대표도 “선거 전 명백한 선심성이다. 국민에게 들통날 것”이라며 반대했다.
예산과 세제를 담당하는 재무성도 부정적이었다. 재무성은 국민 1인당 5만엔을 나눠주려면 약 6조엔이 필요한데, 과거 지원 사례를 검토한 결과 “저축으로 흘러들어 효과가 없었다”며 자민당 간부들을 설득했다.
결정적인 것은 여론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이 11~13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현금 지급과 관련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6%에 달했다. 12~13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도 소득에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데 ‘반대’가 55.3%로 ‘찬성’(37.5%)보다 많았다.
총리실은 결국 15일 자민당 집행부에 “현금 지급 열기가 식었다”며 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시바 총리와 모리야마 간사장이 협의한 직후였다. 자민당 집행부도 “오히려 표를 깎아 먹을 뿐”이라며 물러섰다. 선거를 앞두고 꺼낸 선심성 정책이 야당 반발과 여론에 밀려 꺾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추경 편성 대신 이미 올해 예산에 반영된 예비비를 활용하고 휘발유값 인하, 전기·가스 요금 지원 등을 통해 물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가격 급등으로 물가에 부담을 주는 쌀은 정부 비축미를 추가 방출할 예정이다.
포퓰리즘 논란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전 국민 현금 살포는 백지화됐지만 대신 ‘소비세(부가가치세) 감세’ 논란은 진행형이다. 특히 공명당이 소비세 인하에 적극적이다.
반면 자민당 집행부는 반대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내에선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다. 소비세는 일본 정부 세수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주요 사회복지 재원으로 쓰인다. 만약 소비세를 내리면 다시 올리기 어렵다는 점도 정부에 부담이다. 소비세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