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반도체 설계 전문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 본사에서 ‘퓨리오사AI 신경망처리장치(NPU)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은구 기자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반도체 설계 전문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 본사에서 ‘퓨리오사AI 신경망처리장치(NPU)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은구 기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일제히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에 수십조~수백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AI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공약의 구체성이 떨어져 투자금액을 두고 숫자 싸움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민주당은 국가 역할을, 국민의힘은 규제 혁파를 통한 민간 주도 육성을 강조하면서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재명·김경수 "100조원 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14일 "(대한민국을) AI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게하겠다"며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AI 관련 예산을 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증액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정부가 민간 투자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했지만 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강화하고 기술자, 연구자, 투자기업과 정부의 협력을 대통령인 위원장이 직접 살피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규제 특구 조성도 공약했지만 업계에서 요청하는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이나, 세제혜택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국형 챗GPT를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며 무상 시리즈를 이어간 것도 이 후보만의 특징이다.
사진=강은구 기자
사진=강은구 기자
김경수 후보도 5년간 민관 공동으로 100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전략적 국가 투자로 정부가 혁신의 위험을 부담하겠다"며 AI와 차세대반도체, 바이오헬스, 모빌리티, 탈탄소 등 5대 첨단기술 분야 연구·혁신 사업을 위해 국가전략기술기금 50조원을 조성해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후보가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는 것은 대규모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언급한 점이다. 그는 "감세 기조를 중단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증세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연 후보도 100조원을 투자 계획을 밝혔다. AI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장기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료AI 비판한 安·200조 띄운 韓

(왼쪽부터) 대선 출마 선언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장관 13일 서울 서초구 온누리교회 예배 참석, 대선 출마한 홍준표 대구장 11일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퇴임식, 한동훈 국힘 전 대표 12일 가덕신도시공항 부지 방문, 안철수 의원 13일 서울 국회에서 대선공약발표, 나경원 의원 12일 서울 중앙대학교 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청년 간담회  /사진=뉴스1, 연합뉴스
(왼쪽부터) 대선 출마 선언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장관 13일 서울 서초구 온누리교회 예배 참석, 대선 출마한 홍준표 대구장 11일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퇴임식, 한동훈 국힘 전 대표 12일 가덕신도시공항 부지 방문, 안철수 의원 13일 서울 국회에서 대선공약발표, 나경원 의원 12일 서울 중앙대학교 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청년 간담회 /사진=뉴스1,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도 AI 공약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과학기술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가 가장 적극적으로 관련 이슈를 언급하고 있다. 안 후보는 한경과 인터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듯 AI 고속도로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AI데이터센터를 설치하고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를 GDP의 5%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작년 명목 GDP 2549조원의 5%는 약 127조원에 해당한다. 그는 투자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최소 수백조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무료 AI를 겨냥해 "돈을 나눠주는 게 투자가 아니다. 규제를 풀고 인프라를 깔아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 52시간제 특례를 담은 반도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100조원 발표 후 공약을 제시하면서 두배인 200조원을 투자액으로로 제시했다. 한 후보는 AI 인프라에 150조원, 생태계 조성에 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한 후보는 "의료 AI, 로보틱스, 국방 AI, 드론, 자율주행 등 실제 응용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한국의 팔란티어'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를 돕기 위해 '미래전략부'를 신설하고 교육과정 전면 개편을 통해 AI 전문 인재 1만명을 양성한다는 방침이다.

홍준표 후보는 50조원을 5년간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민간 주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AI에만 국한하지 않고 양자컴퓨터 등 첨단산업 전반을 함께. ‘초격차 기술 해소’를 목표로 해야한다"고 밝혔다. 신산업 'Gate Free' 도입, 규제 배제 특별구역 설치도 공약했다.

나경원 후보는 100조원 미래성장펀드를 조성해 AI·반도체·우주 등 분야 투자를 돕겠다는 방침이다. 김문수 후보도 권역별 AI 융합지원센터를 구축하고 10대 신기술을 육성해 AI분야의 G3 국가로 도약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이 제시한 50조~200조원 규모의 투자 금액은 업계에서 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투자금액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AI 분야의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노력에 따라 달성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세계 6위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중국이 이를 추격하는 가운데, 3~5위권인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는 한국과 그다지 큰 격차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공약 단계에서 투자 방식이나, 규제 완화의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아 정책의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규모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정부보다는 기업이 AI 개발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가 구체적인 사업을 주도하기보다는 지원과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