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에 피운 꽃...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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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에도 매력적인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있었다.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은 이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해 재조명하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시리즈의 일환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한국 미술사 연구가 추상미술과 민중미술에 집중되면서 방계인 초현실주의는 잘 알려지지 못했다”며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조명하기 위해 지난 7년간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 1부는 이중섭, 천경자 등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박 학예사는 “아이들과 여인 등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도 환상적인 장면을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이 많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와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4부에서는 김욱규·김종남·김종하·신영헌·김영환·박광호 등 작가 여섯 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고통 속에서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며 보석 같은 작품을 남겼던 이번 전시의 주인공들이다.


함흥 출신의 김욱규(1911~1990)는 1·4 후퇴 때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월남한 뒤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했지만 판매는커녕 전시조차 열지 못했다. 그의 첫 개인전은 세상을 떠난 뒤 장남이 1991년 마련한 유작전이었다. 가족과의 생이별과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가난에 대한 절망이 담긴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작품들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날개가 찢어진 채 나뭇잎 위에 앉아있는 날벌레를 그린 ‘제목 없음’이 대표적이다. 김종하(1918~2011)는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초현실주의를 배워온 화가다. ‘색장갑’은 묘하게 성(性)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움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일반 대중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 많다. 신선한 작품들을 통해 그간 몰랐던 한국 근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박 학예사는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평생 자신만의 초현실주의 작품 세계를 추구한 작가들”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성수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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