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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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쓰레기를 압축하는 기계가 굉음을 내며 폐기된 원단을 네모난 블록 모양으로 강하게 눌렀다. 낡은 천과 약한 페인트 잉크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지구의 날'인 지난 22일 찾은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울시 폐현수막 전용 집하장'에서는 본격적인 선거철을 앞두고 급증할 폐현수막을 적재할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국 첫 '폐현수막 전용 집하장' 마련 나선 서울시

사진=오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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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시기마다 반복되는 폐현수막 처리를 놓고 골머리를 앓던 서울시가 전면적인 제도 개선에 나섰다. 전국 최초로 전용 집하장을 설치해 현수막 수거부터 재활용까지 일원화된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시는 이를 위해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내부에 폐현수막 전용 집하장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가동 준비에 돌입했다. 해당 집하장은 시에서 마련한 봉제원단 폐기물 집하장과 더불어 약 218㎡ 규모의 창고형 공간 내부에 조성됐다. 현재까지 이곳에서 수용할 수 있는 물량은 봉제원단이 최대 70톤 정도, 폐현수막만 최대 10톤 정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용산구와 광진구를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전체 자치구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치구별로 현수막을 자체 수거·소각했으나 이번 집하장 설치로 통합 관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시 관계자는 "서울 전역에서 발생하는 폐현수막을 한곳에 집결시켜 정확한 배출량을 파악하고, 재활용 효율도 극대화할 수 있다"며 "앞으로 표준화된 처리 기준을 마련해 다른 지자체로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폐현수막 3장 중 2장은 소각정부 차원의 일괄 가이드라인은 미비

서울 용답동에 위치한 '서울새활용플라자' 내 걸려 있는 폐현수막의 모습. 정치 선거용으로 활용되는 폐현수막은 잉크 이염 문제, 재활용이 어려운 저렴한 원단 사용 등으로 재활용은 물론 새활용도 쉽지 않다. 오유림 기자
서울 용답동에 위치한 '서울새활용플라자' 내 걸려 있는 폐현수막의 모습. 정치 선거용으로 활용되는 폐현수막은 잉크 이염 문제, 재활용이 어려운 저렴한 원단 사용 등으로 재활용은 물론 새활용도 쉽지 않다. 오유림 기자
폐현수막은 대표적인 '일회용 폐기물'로 꼽힌다. 생활 폐기물에 속하지만, 낮은 단가로 빠르게 제작하려다 보니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나 잉크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도심 곳곳을 뒤덮은 폐현수막이 대부분 수거 후 소각되는 이유다.

문제는 선거철마다 폐현수막이 대량으로 배출된다는 점이다. 소각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나오고 재활용도 어렵다 보니 꾸준히 환경 문제가 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기후변화행동연구와 녹색연합에 따르면 가로 3m, 세로 3.3m 크기의 폐현수막 1장을 만들고 버리는 데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약 4㎏( 환산 기준)에 달한다. 이는 승용차 한 대가 2km 가까이 주행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폐현수막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는 약 1만9634톤으로 추정된다.

정부도 폐현수막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환경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난 16일부터 한 달간 '폐현수막 자원순환 문화조성 경진대회'를 개최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전국 폐현수막 발생량 5408톤 중 33.3%(1801톤)만 재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여전히 3분의 2 이상이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처리 및 배출 가이드라인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엉성한 지자체 통계를 바탕으로 한 폐현수막 처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지난해 규모가 비슷한 서울 자치구 두 곳의 폐현수막 배출량이 각각 1톤과 20톤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자치구의 담당 공무원조차 "비현실적인 통계"라며 오류 가능성을 인정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환경부에서는 폐현수막이 총 몇톤 나왔는지, 재활용률은 어떻게 되는지만 물어본다"며 "일관된 기준이 없다 보니 지역별 담당 부서도 다르고 통계를 내는 과정에서 배출량도 재활용률도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유혜인 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팀장은 "지자체마다 폐현수막에 대한 관심 차이도 큰데다 정확한 수치 통계가 없다 보니, 관련 문제 대책 마련이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폐현수막, 재사용해도 결국 소각재활용 경제성 맞추기도 숙제

서울 용답동 '서울새활용플라자' 내 새활용에 성공한 폐현수막 제품이 놓여 있다. 오유림 기자
서울 용답동 '서울새활용플라자' 내 새활용에 성공한 폐현수막 제품이 놓여 있다. 오유림 기자
통계가 명확히 나오더라도 일각에서는 폐현수막을 에코백, 마대 등으로 단순 가공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재활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폐현수막을 단순 재사용하는 데 오히려 더 비용이 들기도 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폐현수막을 활용해 에코백을 제작했지만, 제작에 투입된 예산이 훨씬 더 커서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사업인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업사이클링 업체 등이 입주해 있는 서울새활용플라자의 한 관계자는 "특히 저렴한 비용으로 다량 생산되는 선거용 폐현수막은 잉크 이염 등의 문제로 재사용과 새활용 모두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소각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폐현수막 1톤 당 소각 비용이 30만원 정도로 잡았을 때, 다른 방식으로 폐현수막을 처리하는 비용이 이보다는 훨씬 적어야 소각이 아닌 방법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폐현수막을 구성하는 섬유를 아예 분해해 고형연료(SRF)나 원료로 재가공하려면 고도의 기술과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관련 업체 수가 적고 선거철 등 한시적으로 활성화하는 특성이 있다보니 산업 발전이 더디고, 관련 업체 수도 쉽게 늘지 않는다. 지자체 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중개해 온 A씨는 “전국적으로 폐섬유를 고형 펠릿으로 바꿔주는 업체는 한두 곳뿐”이라며 “이마저도 채산성이 낮아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실제 A씨가 중개를 도왔던 폐현수막으로 고형 펠릿을 제작하는 업체 중 한 곳도 최근 파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집하장과 같이 다량의 폐현수막을 한꺼번에 모으거나 압축할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해도 폐현수막 처리 업체 입장에서는 한 번 운송하더라도 경제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시범 운영을 거쳐 효율적인 처리 모델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최주섭 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은 "현수막이 생활폐기물에 속해 규정상 지자체 자율 처리가 원칙이지만, 매년 환경 문제가 제기되는 만큼 정부가 현황 및 대책 마련과 관련해 전국적으로 연구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유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