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출범 콘퍼런스
전문가들 통상·외교 전략 제안
경제제재·반독점·환경규제 실무 조언도
트럼프 2기 통상공세...韓, 기회로 바꿀 전략 시급
“AI 칩 통제, 제재 위반 벌금도 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공세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운데, 이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경제 블록화를 활용한 틈새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22일 서울 공평동 센트로폴리스빌딩 25층 세미나실에서 '통상전략혁신허브' 출범을 기념해 트럼프 2기 100일의 통상 환경을 분석하는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1부 '경제·통상·외교·안보'와 2부 '경제제재·반독점·환경규제' 세션으로 진행됐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재계 및 학계 80여곳에서 100여명이 참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22일 서울 공평동 센트로폴리스빌딩 25층 세미나실에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100일을 앞두고 한국 기업들이 직면할 경제통상 환경의 변화를 점검하고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 통상전략혁신 허브' 출범 기념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왼쪽부터),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차관, 표인수 고문이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 태평양 제공
"미국, 세계 질서 백년 전으로 되돌려...관세는 중국 견제 수단"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개회사에서 "불확실성 시대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만나는 '봉변'이 아닌, 앞을 내다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능변'이 필요하다"며 "혼돈 속에서 기업들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통상전략혁신허브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1부에서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최병일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은 "트럼프는 관세라는 카드로 우리가 알던 국제 통상 질서를 100년 전으로 되돌렸다"며 "트럼프의 진짜 타깃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으로, 관세 전쟁은 결국 21세기 패권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가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은 FTA 체결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평균 관세가 미국보다 4배 높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일 방안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급박하게 협상을 타결하기보다 차기 정부가 맡는 방식으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며 "우리의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원장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중국의 과잉 공급이 핵심 문제"라며 "중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0%를 차지하지만, 소비는 13%에 불과한 엄청난 불균형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에 미국이 관세를 대폭 올리면 중국 제품이 한국이나 일본, 대만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우리는 과연 자신 있게 무역구제 카드를 꺼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우리가 알던 WTO 체제는 이제 기능이 정지됐다"며 "심판 기능이 없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제소할 수 없고, 룰 기반 시스템이 아닌 '딜(거래)' 중심의 양자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상호의존성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생각은 이제 상호의존성이 깊으면 역으로 무기화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며 "효율성보다는 자국 통제 가능한 공급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이제는 자비로운 패권국가 아닌 상호주의 국가로"
외교부 1 차관을 지낸 임성남 고문은 "미국은 더 이상 '자비로운 패권국가(Benevolent Hegemon)'가 아닌 '상호주의적 패권국가(Reciprocal Hegemon)'로 변모했다"며 "관세, 시장개방, 방위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투자 유치 등 다양한 요구가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브 미란은 '그냥 미국 재무부에 수표를 써서 돈을 내라(Simply write checks to the treasury)'고 말할 정도로 직설적"이라며 "미국이 제공해온 달러 기축통화와 안보 우산이라는 '쌍둥이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 "지금 미국과 중국은 신경이 연결된 '샴 쌍둥이' 같은 상태로, 완전한 분리가 어렵다"며 "이런 불확실성이 약 30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미중 간 종전은 어렵고 휴전은 가능하다"며 "첨단 산업에 대해서는 양국 모두 결코 양보하지 않겠지만, 전통 산업 분야에서는 타협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에너지 분야가 중요한 대타협의 고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와 LNG 수출국이고, 중국은 최대 수입국인 상호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이 분야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임 고문은 "경제 블록화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며 "인도, 아세안, 중국 등 각각 독자적 규모의 경제 블록이 형성되고 블록 간 교류가 활발해질 때 그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과 중국 간 관계가 긴밀해지면 중국으로 수출할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위기를 기회로...한국의 제조업 경쟁력 살려야"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허경욱 고문 주재로 진행된 대담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의 표인수 고문은 "현재 위기의 원인은 ▲중국의 부상 ▲첨단산업 경쟁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특히 공급망 관리에서 ESG와 트럼프 정부 대응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Q&A 세션에서 "미중 중 어느 쪽이 이기는 게 한국에 유리한가"라는 질문에 최 원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제조업 중심 국가로, 이를 포기할 수 없다"며 "미국이 중국의 첨단 제조업을 견제하는 상황이 우리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8년 전 트럼프 1기 때는 잠재성장률이 3%대였지만 지금은 1%대로 하락했다"며 "더 이상 추락할 공간이 없어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다시 반등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임 고문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공공재를 그냥 베풀어 주던 시기는 지났고, 중국도 단순히 가까운 큰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선입견 없이 세상의 변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최 원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의 격돌이라는 바람이 당장은 위기로 느껴지지만, 4년을 잘 견디면 기회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재는 전쟁을 대체하는 수단"
2부 세션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제재, 반독점 규제, 환경 규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외교부 통상자문관 근무 경험이 있는 김지이나 변호사(사법연수원 35기)는 "현대 국제관계에서 제재는 전쟁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중국에 대한 기술·투자 통제와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트럼프 2기에서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의 경제제재는 크게 중국에 대한 기술·투자 통제와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나눌 수 있다"며 "최근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통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특히 "AI 칩 수출 통제는 점점 확대되는 추세"라며 "최근에는 국가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동맹국에는 AI 접근성을 인정하고, 중국 등 '우려국'에는 차단하며, 그 중간 국가들에는 '총연산력' 상한선을 두는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서는 "트럼프가 러시아에 우호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취임 후 제재를 연장했다"며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 제재의 최대 수혜국이 되고 있어,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러시아 제재 집행이 강화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제재가 일부 해제되더라도 국가마다 제재 상황이 다르고, 금융기관들이 자체 컴플라이언스 정책에 따라 거래를 거부하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 있어 정상적인 거래까지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트럼프가 '유연성(flexibility)'을 강조하는 만큼,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언제든 재도입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대응책으로는 "제재 위반 시 임직원 개인과 법인 모두 천문학적 벌금 위험이 있다"며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더라도 기본적인 제재 준수 프로그램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반독점법, 빅테크 넘어 전략산업까지 확대"
공정거래 전문가인 강일 변호사(32기)는 "트럼프 행정부가 실리콘밸리 빅테크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천명했으며, 이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메타의 인스타그램·왓츠앱 인수를 문제 삼아 자산 분리 매각을 요구하고, 미국 법무부(DOJ)는 구글에 크롬 브라우저 매각이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분리와 같은 구조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FTC 민주당 위원 2명을 해임한 것처럼 독립 규제기관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특징인 불확실성이 경쟁법 집행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시장에 대한 반독점법 적용 확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FTC가 노동시장 내 반경쟁 행위를 집중 조사하는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며 "이는 경쟁법이 전통적 영역을 넘어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의 대응방안으로는 "미국 시장 진출 시 공급망·유통망의 계약 조건에서 불공정 조항이나 배타적 거래 조건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희귀금속, 철강, 의약품 같은 전략 산업 공급망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적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DOJ 반독점법 책임자가 알고리즘 담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AI나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한 가격 책정이 반독점법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 내 고용 시 기술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제한 조항이 반독점법으로 규제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트럼프 환경정책 후퇴에도 해외 탄소세는 강화"
태평양 ESG센터 소속의 김진효 외국변호사(미국 오레곤주)는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정권의 친환경 정책들을 폐기·축소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미국 에너지 해방' 구호 아래 석탄발전 활성화를 추진하고, 그린 뉴딜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환경청(EPA)은 이미 지난 3월 31개 환경규제를 완화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전기차 의무 비율을 전면 폐지하고 내연기관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해상 풍력발전의 임대 승인 발행 중단과 태양광, 풍력 발전 허가 관행 전면 검토를 지시했다"며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친환경 분야의 보조금과 세액공제 지원이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파리협정 재탈퇴와 국제 기후금융 계획 폐지를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점은 "자국 내 환경규제는 완화하면서도, 해외 수입품에 대한 탄소세는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화당이 재발의한 '해외오염관세법'이 알루미늄,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제품에 대해 미국 현지 생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차이에 따른 탄소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라며 "미국 수출기업들은 이를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 의무화가 법원 소송으로 집행이 정지된 상태에서, SEC가 관련 집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며 "미국 상장기업의 기후공시 의무는 실질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