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덮인 장엄한 파도…카메라 렌즈 속 ‘황홀한 폐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 기후환경 사진전
CCPP - 더 글로리어스 월드
CCPP - 더 글로리어스 월드

여기 ‘Gyre(소용돌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있다. 언뜻 보기엔 명작을 오마주한 흔한 점묘화 같다. 그런데 고개를 내밀어 주의 깊게 보면 어딘가 독특하다. 거대한 파도부터 흩날리는 물방울까지 쓰레기장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 자세히 보니 회화가 아니라 디지털 사진이다. 옆엔 이런 작가의 설명이 적혔다. “240만 개의 해양 플라스틱 조각. 세탁기에서 발생해 8초마다 전 세계 바다로 유입되는 마이크로 섬유의 추정량에 해당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경오염과 기후위기가 종말의 시계를 앞당기는 상황을 극적으로 담아낸 사진가들의 전시가 열렸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2025 CCPP - 더 글로리어스 월드’다. CCPP(Climate Change Photo Project)는 세계적인 기후위기 심각성을 깨닫고, 사진을 통해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중구문화재단이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사진 프로젝트다.

‘Gyre’와 함께 크리스 조던의 ‘숫자를 따라서(Running the Numbers’ 시리즈가 눈에 들어온다. 태평양 바다의 약 2.5㎢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의 평균 개수인 5만 개의 담배 라이터로 만든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소비되는 24만 개의 비닐봉지로 만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은 아름다움을 위해 외면했던 환경오염 문제를 일깨운다.

전시는 심미적 기능보단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다. 매일 환경오염이나 기후위기, 생존의 갈림길에 선 동식물과 관련해 수백만, 수십억, 수조 단위로 표시되는 숫자를 접하지만 어렴풋할 뿐인 관람객에게 출품된 작품들이 직관적인 경각심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석재현 예술감독은 “지구가 인간에게 베푼 많은 것들과 우리가 얻은 혜택을 느끼고 삶을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열린 후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서 이어진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