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워싱턴DC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관세로 달러 표시 자산에 전에 없던 ‘트럼프 프리미엄(위험 수수료)’이 붙었다”며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화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워싱턴DC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관세로 달러 표시 자산에 전에 없던 ‘트럼프 프리미엄(위험 수수료)’이 붙었다”며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화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트럼프는 다른 나라가 미국의 필요에 맞춰 경제정책을 바꾸길 바랍니다. 문제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도 그걸로 끝날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세계적 국제경제학자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국이 관세협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모두 응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세계 경제에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무역적자를 감수하고 있다며 미국이 국제무역의 희생자라는 트럼프 측 논리는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트럼프 취임 100일을 앞둔 지난 18일 워싱턴DC에 있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서 옵스펠드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이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로 시장의 혼란이 큽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달러 표시 자산에 전에 없던 ‘트럼프 프리미엄(위험 수수료)’이 붙었습니다. 달러 자산이 안전성과 유동성을 갖춰 미국이 (국채 시장에서) 더 낮은 금리를 적용받았는데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 역할이 의심받는 거죠. 그 영향이 얼마나 클지, 언제 정상으로 돌아갈지 말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차기 정부가 정책을 바꿔도 그럴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몇 년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방위 관세가 대공황 때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공황 때 도입된 스무트-홀리 관세법(1930년)과 트럼프 관세는 목적이 다릅니다. 대공황 때 관세는 미국 산업의 이익을 지키려는 동기가 강했습니다. 반면 트럼프 관세는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 대한 체계적 공격입니다. 미국의 이익에 맞게 무역 시스템 전반을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트럼프식으로 표현하면 ‘다른 나라가 미국을 벗겨 먹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가요.

“미국은 그동안 세계에 공공재(달러)를 제공했지만 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스토리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경제 구조의 희생자이며 이를 바꿔야 한다는 거죠.”

▷미국이 희생자인가요.

“달러가 기축통화인 만큼 국제무역에서 공공재이고 공공재에 비용이 드는 건 맞지만 비용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러가 기축통화여서 미국 금융 시스템이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전략적 이점도 있습니다. 통화정책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고 테러, 부패, 해외 자금세탁 정책 등에서 미국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반영되죠.”

▷달러가 기축통화여서 구조적 강세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기축통화로 인한 달러 강세 효과에 대해선 다양한 추정이 있습니다. 일각에선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추산하기도 하는데, 최근 IMF 분석에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달러 강세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졌다는 지적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나옵니다.

“달러 강세가 무역흑자를 줄일 순 있지만 반드시 무역적자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트럼프는 관세협상에서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선 재정적자부터 줄여야 합니다. (무역적자는 미국의 저축 부족과 과소비가 주요 원인인데) 미국 정부는 세수에 비해 너무 많이 지출하고 있습니다.”

▷관세를 통한 미국 제조업 부흥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1950년대처럼 공장 노동자들이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그런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고급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미래를 찾아야 합니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의 ‘미란 보고서’에 부정적이겠군요.

“그 보고서는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큽니다. 특히 ‘미국이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무역적자를 감수하고 있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미국이 세계에 공급하는 달러 유동성과 무역적자 사이에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습니다. 예컨대 2015~2016년에 중국은 미국 자산 1조달러어치를 팔았습니다(달러 유동성 감소). 하지만 미국의 무역적자는 그만큼 감소하지 않았죠. (미국이 희생자라는 건)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그런 주장이 트럼프 정책의 출발점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목표는 서로 모순돼 있기 때문에 여러 딜레마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싶지만,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달러를 강하게 만들고 싶고, 동시에 (제조업 진흥을 위해) 달러가 약해지길 바랍니다.”

▷불가능한 목표인가요.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상충하는 목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른 나라가 자국의 정책 목표를 포기하고 통화·재정·산업 정책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겁니다. 관세 위협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말이죠. 하지만 세계 각국이 미국을 위해 국익과 정책 수단을 포기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죠.”

▷미국이 계속 압박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칫하면 각국이 미국의 압력을 차단하기 위해 무역과 금융 시스템을 미국과 분리하려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은 25% 수준입니다. 나머지 국가가 75%입니다. 미국이 세계를 압박해 미국에 유리하게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양보를 원합니다.

“진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작은 양보에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고 미국에서 방위산업 물품을 수입하거나 미국 조선업 재건에 협력하는 것 등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유럽이 미국에 완전히 굴복하고 속국으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면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극단적 목표를 주장해온 트럼프가 후퇴하고 더 합리적인 방안으로 타협할까요.”

▷요구 사항이 불분명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한 요구를 제시한다 해도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끝날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트럼프 1기 때 협상을 통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대체했습니다. 트럼프 스스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라고 했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했습니다. 힘들고 진지한 협상이었는데 갑자기 유효하지 않게 됐죠. 트럼프 요구에 굴복하면 더 많은 요구가 이어질 수 있고, 그런 요구를 들어준 나라에 신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한국은 지리적 위치와 지역 내 긴장 상황을 고려할 때 압력에 특히 취약합니다. 더 많은 지역 협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게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내 많은 국가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과도 협력해야 합니다.”

▷대선을 앞둔 한국은 당분간 과감한 결정을 하기 힘들 텐데요.

“한국에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워싱턴과도 대화해야 하지만 다른 것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별로 하나씩 공략하길 원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공조하지 않기를 바라고, 분열돼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각국은 협력에 나서야 합니다.”

모리스 옵스펠드는 국제경제학·통화 분야 석학…IMF·일본은행서 정책 조언

모리스 옵스펠드는 국제경제 분야 석학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거쳐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쓴 <국제 거시경제학의 기초>,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쓴 <국제경제학>은 국제경제학 분야의 대표적 교과서로 꼽힌다.

현실 경제정책 입안에도 적극적이었다. 2002~2014년 일본은행 통화경제연구소 명예고문을 지내며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고령화, 부채 증가 등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구조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2014~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2015~2018년)를 지냈다. 현재 UC버클리 경제학과 명예교수이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