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까지가 작품…단풍잎과 꽃의 색이 그려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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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 작가 개인전 ‘is of’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서
8월 17일까지
‘인물의 부재’, ‘형식의 확장’, ‘그림자의 등장’
이전 작업과 달라진 세 가지 특징 돋보여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서
8월 17일까지
‘인물의 부재’, ‘형식의 확장’, ‘그림자의 등장’
이전 작업과 달라진 세 가지 특징 돋보여

백정기 작가의 작품은 이 같은 의문을 동반한다. 작가는 자연 풍경을 촬영한 후, 그 장소에서 단풍잎이나 꽃을 채취한다. 주워 모은 식물로 잉크를 만들어 사진을 인화한다. 특별한 잉크로 출력한 사진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면서 점점 색이 바래고 흐려지는데, 그는 이 과정을 늦추기 위해 특수 제작한 장치에 작품을 넣어 전시한다.
작품에 병렬된 욕망과 섭리
그의 개인전 ‘is of’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열리고 있다. 전시장 벽에 걸린 작품들은 복잡한 회로 장치와 실린더가 부착돼 있어 일반적인 사진과는 다른 낯선 인상이다. 작가는 사진 표면을 에폭시 레진으로 덮은 후 장치 안에 넣어 산소와의 접촉을 막는다. 그가 직접 만든 이 챔버는 산소를 비활성기체인 질소로 치환해 색소와의 화학 반응을 막아 사진 속 색을 의도적으로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이 특별한 시리즈의 탄생은 2011년 미국 코네티컷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빼어난 자연 환경으로 잘 알려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던 그는 특별한 사진을 위한 특이한 발상을 떠올린다. 비싼 기성 잉크 대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데이지꽃이나 풀, 비트로 잉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시간이 지나며 색이 흐려지다 사라지지만, 바로 그 ‘사라짐’이야말로 곧 그가 말하고자 한 작품의 핵심이자 본질이었다.

대신 그림자가 등장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그림자가 자연의 본질을 해친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배제해왔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됐다”며 “그림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내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가 감각하는 자연뿐’이라는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 형식을 차용해 의미를 담았다. 제한된 관람 시간동안에만 마주할 수 있는 제단화가 지닌 ‘지금 여기’의 시간성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되다 소멸해 한 순간도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작품을 결합해 그만의 아우라를 드러낸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강은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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