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산동의 한 어린이집은 지난 2일 마지막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곳은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해 오는 8월 말까지만 운영한 뒤 폐원할 예정이다. 원장을 맡고 있는 장소희 씨는 “정원 50명 중 등록 원아가 34명에 불과해 수년간 적자가 지속됐다”며 “23년간 한 자리를 지켜왔지만 더 이상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폐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저출생에 직격탄 맞은 어린이집
서울 시내 어린이집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어린이집은 4212곳으로 전년(4431곳) 대비 219곳 줄었다. 1.7일에 한 곳씩 문을 닫은 셈이다. 어린이집 폐업의 직접적 원인은 저출생에 따른 영유아 인구 감소다. 같은 기간 서울시 영유아 인구(0~5세)는 16만5508명에서 15만9742명으로 줄었다.
어린이집 중에서도 가장 타격이 큰 곳은 정원 20명 이하로 운영하는 소규모 가정 어린이집이다. 지난해 서울 가정 어린이집은 1258곳에서 1138곳으로 9.5% 감소했다. 국공립, 법인, 민간 등을 포함한 전체 어린이집 감소폭(4.9%)보다 크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가정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가정 어린이집은 시설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0~2세반 위주로 운영한다”며 “다른 연령대 반을 운영하지 못해 인원 충원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원아가 줄어도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비용은 그대로여서 많은 원장이 어쩔 수 없이 폐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조기 교육 열풍…유치원에 밀려나
조기 교육 열풍도 어린이집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육아정책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2023년 5세 아동의 유치원 이용률은 57.4%로, 어린이집 이용률(32.0%)을 크게 웃돌았다. 5세 아동의 유치원·어린이집 이용률은 학부모의 교육·보육기관 선호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연령대이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여서다.
조기 교육 수요 증가로 유치원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어린이집 운영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조현진 씨는 “어린이집은 기본적으로 보육기관이다 보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외부 강사를 별도로 채용해야 한다”며 “음악, 미술, 체육 강사를 프리랜서로 뽑아 프로그램을 돌리는데도 월 15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고 했다.
정부의 유보 통합(유치원·보육기관 통합) 정책 기조에 따라 어린이집 확충 예산이 크게 축소된 점도 향후 보육 공백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609억원이던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2023년 492억원, 2024년 417억원, 올해 267억원 등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정 수준의 자연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처럼 빠른 속도로 어린이집이 사라지면 보육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손혜숙 경인교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어린이집이 단시간 내 급격히 사라지면 지역별로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서비스 질이 하락할 수 있다”며 “수요가 아예 없는 곳이 아니라면 기존 시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재정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