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국내 은행이 중·저신용자(신용평점 하위 50%)에게 공급한 신용대출이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규제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가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을 강제로 확대하는 동안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은 되레 고신용자에게 집중돼서다. 업계에선 대출 선택지를 확대할 ‘메기’로 투입된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실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라진 '규제 효과'…중·저신용대출 되레 감소

◇중·저신용대출, 2년간 뒷걸음질

5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 3사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잔액은 작년 말 총 25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26조1000억원)과 비교해 1년 새 5000억원(1.9%) 줄었다. 정부가 금융 취약계층에 대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는 셈이다.

불과 3년 전인 2022년 당시 1년간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합산 잔액은 4조원 넘게 늘었다. 케이뱅크, 카카오뱅크에 이어 2021년 10월 출범한 토스뱅크가 가세해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문을 넓히면서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23년엔 전년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결국 업권 전체 잔액이 쪼그라들었다.

신용대출이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시중은행이 대출 규모를 빠르게 줄인 것이다. 4대 시중은행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잔액은 2022년 말 17조9000억원에서 작년 말 15조9000억원으로 2년간 2조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터넷은행 3사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잔액은 8조2000억원에서 9조7000억원으로 1조5000억원 늘었다. 시중은행이 인터넷은행에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을 맡겨둔 채 고신용자 신용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리 역전 왜곡만 초래한 대출 규제

‘중·저신용자 비율 할당’에 집중된 인터넷은행 규제가 오히려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을 줄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2021년 5월 인터넷은행에 전체 신용대출 잔액 중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잔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3년 말까지 30%로 높이라고 주문했다. 작년엔 개인 대상 신용대출 말고도 개인사업자 대상 신용대출을 포함해 분기별 평균 잔액 비중을 30%로 맞추도록 요구했다. 올해엔 잔액뿐만 아니라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도 30% 비중을 달성하라는 지침을 새로 내렸다.

갈수록 강해지는 규제 탓에 곳곳에서 ‘금리 역전 현상’까지 벌어졌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최저금리는 모두 각각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보다 높다. 카카오뱅크는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상품인 ‘중신용대출’의 최저금리가 가장 안전한 대출인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이 작년 8월부터 9개월간 이어지고 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인터넷은행에 집중된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규제가 결과적으로 취약계층에 도움을 주는 실효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특정 은행에 비중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을 확대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의 당근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