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연 재 
KOTRA 독일뮌헨 무역관장
김 연 재 KOTRA 독일뮌헨 무역관장
지난 2월 실시된 독일 조기총선에서 보수 성향의 기민·기사 연합(CDU·CSU)은 28.6%를 득표하며 제1정당으로 부상했다. 진보 성향의 사민당(SPD)과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CDU 대표) 체제의 새정부가 꾸려졌다.

새정부는 독일 산업 정책을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균형을 잡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양당 간에 합의된 산업 정책을 살펴보면 독일은 전기차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대의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정책을 시행하며 시장의 균형을 잡아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전기차 수요는 여전히 저조하다. 구매 보조금 지급 중단과 충전 인프라 부족, 높은 가격 등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독일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27% 줄어든 38만 대에 머물렀다. 이에 대응해 지난 정부는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법인 차량 구매 시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허용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했지만 호응이 크지 않았다.

미국이 수입 차량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하면서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수출 감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대신 내수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미국발 악재가 독일의 전기차 시장에는 수출용 전기차의 국내 투입 확대와 가격 인하, 인프라 확충 등의 단기적인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독일 대연정은 기술 중립성과 기후 목표 달성을 조화롭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찬성하나, 포괄적인 할당(쿼터)에 대해서는 반대를 표명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독일 정부는 자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어 미래에도 자동차가 자국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밝혔다. 합의안엔 세제 혜택 대상인 법인 전기차의 구입 가격 상한을 10만유로(약 1억6000만원)까지 상향하고 2035년 전기차 자동차세 면제, 기존 자동차 생산 시설을 방위산업 용도로 전환 및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단기적으로 독일 전기차 시장은 조정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경기 부진으로 아직 수요 회복이 완만하고 제조사의 규제 준수 부담도 크다. 일반 소비자는 여전히 가격과 충전 여건, 보조금 종료 등 구매를 유보해야 할 요인이 많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시장의 반등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선 새정부의 구체적인 지원 정책으로 시장에 힘이 실릴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세액공제 위주의 전기차 지원 정책은 독일 기업 입장에선 안정적인 구매 결정 요인이다. 독일은 법인차량의 비중이 약 70%로, 세제 중심의 지원 정책이 직접 보조금보다 효과적이다.

둘째, 유럽연합(EU)의 이산화탄소 규제는 시기를 조정하는 등 유연함을 보이고 있으나, 탄소중립 로드맵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일 남부의 홍수, 스페인 발렌시아의 호우 등으로 피해가 막대했고, 침수로 차량 교체가 이어지며 신차 등록이 증가하기도 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함에 따라 EU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고삐를 놓지 않을 것이다.

셋째, 전기차, 그중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기술 발전 속도는 한국 2차전지 기업을 중심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다. ‘꿈의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는 빠르면 2027년에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가격은 하락할 것이고, 시장의 반환점이 될 수 있다.

미국발 관세 뉴스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 독일도 위기 타개를 위해 다시금 전기차를 중심으로 내실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속담처럼, 전기차라는 미래 과제를 독일의 새 정부가 얼마나 잘 담아낼지가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