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비해 유독 주목할 영화들이 많았던 전주국제영화제지만 그중 화제작 한 편을 꼽아야 한다면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호루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일하 감독 연출의 <호루몽>은 자이니치 3세이자 여성 운동가, 신숙옥이 일본의 거대기업 DHC를 상대로 인종차별 방송에 대한 소송을 벌이는 과정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지난 몇 년간 일본 내의 재일한국인을 중심인물로 하거나 그들을 향한 차별의 역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호루몽>이 다루는 문제의식은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범세대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신숙옥 대표는 인종차별과 혐한의 이슈를 넘어 젠더, 역사, 그리고 환경 문제까지 선두에서 목소리를 내고 (국적을 초월하여) 구성원들과 연대하는 전천후 운동가이다. 이번 작품의 상영을 위해 처음으로 전주에 방문했다는 신숙옥 대표를 만나 영화 속에서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숙옥 대표 / 사진=필자 제공 ▷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신 것은 처음이 아닌가. 전주국제영화제의 참여도 처음인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영화제에 참여한 소감은? 관객들에게 받은 질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무엇보다 부끄럽다. 남 앞에 서는 것을 잘하지 못해서 아직까지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웃음). 첫 상영은 어제였는데, 관객들이 매우 많은 질문을 해주었다. 그중에서 한 분이 “어떻게 그렇게 용기가 많냐”고 물어보신 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용기는 역사를 배우면 생겨난다”고 대답했다. 모르면 두렵지만, 공부하다 보면 피 흘리며 투쟁했던 사람들의 자취에 대해 알게 된다. 나는 그들의 행적에서 용기를 얻는다.
▷ 이일하 감독과는 어떤 인연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나.
이일하 감독과는 2013년에 처음 만났다. 그때 일본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매우 큰 화두였다. 관련한 시위도 많았는데 이일하 감독은 항상 시위의 한 가운데에서 취재하고 있었다. 나 역시 반인종차별 운동을 한창 하고 있을 때라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시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시위도 격렬했는데, 그들의 슬로건은 ‘좋은 한국인이든 나쁜 한국인이든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이런 엄청난 일들이 전혀 기사화되지 않았는데, 이일하 감독은 이런 시위들조차 두려움 없이 기록하고 취재했다. 그때 매우 감동하고 놀랐다.
▷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매우 캐치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재일교포들이 만들어 낸 음식, ‘호루몽’이라는 이 제목을 신숙옥 대표께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재일교포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이 버리는 것을 ('호루'는 '버리다', '몽'은 '물건'이라는 뜻이다. 즉, '버리는 것'이라는 뜻) 한국 사람들이 먹고, 그것을 음식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생계를 유지한 것이 아닌가. 또한 ‘몽’은 ‘꿈’이라는 뜻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꿈을 버리지 말라는 역설로 해석도 가능하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도 그런 중의적인 뜻을 생각해서 이일하 감독이 제목을 매우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노출될수록 스토커나 협박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영화에 나오는 것은 단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것이고 지금까지도 (이미 방송과 SNS를 통해 내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에) 그런 협박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무섭고 당황한 것이 컸지만, 지금은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당연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내가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이런 강인함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 이 다큐멘터리에서 혐한과 차별에 관련한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혹시 영화에 넣을 수 없었거나 빠진 일화가 있는지.
매우 많다. 아이누(일본의 원주민)에 대한 차별, 아메라지안(미군과 아시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과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 등 일본 안에서만도 차별의 종류는 차고 넘친다. 차별주의자들에게 차별은 쾌락이다. 한 그룹에 대한 차별이 흥미가 떨어지면 언제든 다른 그룹으로 향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담지 못했다.
▷ 재일한국인을 중심 캐릭터로 하거나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 그간 많이 만들어졌지만, 본인과 같은 액티비스트, 특히 일본 내의 혐한이나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뿐만이 아닌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까지 대변하는 폭넓고도 능동적인 액티비스트는 처음 만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본인이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 어떻게 그려지길 바랐나.
우선 나는 고졸이다. 다시 말해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게다가 집도 가난했고, 부모님 역시 사회적으로 능동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서 내가 가장이 돼야 했고, 사업도 하게 됐지만, 순전히 다 운이 좋았던 덕분이었다. 재일한국인, 그리고 여성으로서 이 정도까지 올라오게 된 거의 최초의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런 행운을 나만을 위해 쓰면 안 된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하고 참여하고 버티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본의 인종 차별 문제는 사실 재판했을 시기보다 더 심해졌다. 차별에 관한 문제는 (나는 재판에서 승소했을지언정) 한 번도 해소된 적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가 가장 극단적인 시기이다.
▷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주요 캐릭터는 신숙옥 여사의 어머니가 아닌가 (일본에서의 한국인 이민 역사를 그리는 과정에서 신숙옥 여사의 어머니 역사가 비춰진다). 어머니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참고로 말하면 우리 엄마는 아버지랑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던 사람이다 (모두 웃음). 그런 엄마가 이번 영화를 하면서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엄마도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를 같이했는데, 그걸 위해서 한 달 전부터 옷을 고르고 운동을 하셨다. 원래 배우가 꿈이었는데, 이번에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지금 나보다 자신의 꿈을 이뤄 준 이일하 감독님을 더 좋아하신다 (웃음).
▷ 이 다큐멘터리는 재일한국인으로서 겪는 차별의 역사와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고난도 그려지지 않나. 특히 젠더 의식이 더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 액티비스트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인가.
(웃음) 매우 매우 힘들다. 사실 더 힘들게 하는 존재는 재일교포 남성이다. “(한국어로) 징짜 혼내 줘야 해.” (웃음) 명문대의 교수이자 나름 사회 운동가인 한 재일교포 남성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나에게 일본의 페미니스트들과 작당하여 왜 반말하고 다니냐고 공격하며, 남자들의 고생을 당신이 알기나 하냐는 식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그냥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상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다른 나라의 이민자 남성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이민을 왔을 때의 시대에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재일한국)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거나 불안해한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가장 맹렬한 공격을 해왔던 단체도 조총련과 민단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들은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한국인) 차별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 안 한다 (웃음). 난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밝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엄마와는 다르게 별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
▷ 이번 전주에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나 음식은 어떤 것이었는지.
오늘 점심으로 전주비빔밥 정식을 먹고 왔는데 너무나도 맛있어서 놀랐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처음 먹었을 때 이상의 쇼크(?)다 (웃음).
신숙옥 대표 / 사진=필자 제공
신숙옥 대표와의 인터뷰 중간에 몇 번이고 울컥하는 것을 참아야 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그녀의 대담함과 영특함에 감탄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녀는 나의 가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기량과 의식을 가진 파이터이자 영웅이었다. 한 관객에게 그녀가 했다는 답변, “용기는 역사를 배우면 생겨난다”라는 말은 이번 인터뷰, 혹은 <호루몽>이라는 작품과 현재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 사회가 앓고 있는 역사적 병폐들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 현문(賢文)이었다. 신숙옥이라는 거대한 인물을 발견한 이 영화, <호루몽>은 분명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