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역사의 일본 도쿄 문화 예술 성지 우에노공원. 8일 찾은 공원은 초입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서 있었다. 긴 줄 끝에서 만난 것은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국립서양미술관. 르네상스부터 19세기 말 인상파까지 약 600년에 걸친 서양 회화의 흐름을 좇는 ‘서양 회화, 어디서부터 볼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소장품 전시다. 비(非)유럽권에서 유럽 미술품을 수집해 온 대표적 두 미술관의 컬렉션을 함께 비교할 보기 드문 기회라는 점 때문에 인산인해였다.

입장권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미술관 앞뜰의 오귀스트 로댕 3종 세트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지옥문’이나 미술관이 운영하는 ‘스이렌(수련)’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의 대표 컬렉션은 클로드 모네 등 인상파 회화와 로댕을 비롯한 19세기 조각 작품이다. 서양미술 명작들이 왜 이곳에 모여 있을까. 그 시작엔 한 남자가 있다. 100년 전 유럽을 다니며 미술품을 사 모은 일본 기업인 마쓰카타 고지로다. 국립서양미술관은 그가 수집한 컬렉션을 발판으로 1959년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역’으로 기네스 기록에 오른 신주쿠역. 세계인이 북적이는 이 거리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다. 일본 최초 손해보험사 솜포재팬의 미술재단이 운영하는 솜포미술관 소장품이다.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는 아시아 유일 미술관인 솜포미술관은 기업이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세운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시바시 쇼지로 브리지스톤타이어 창업자의 아티존미술관, ‘철도왕’ 네즈 가이치로의 네즈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솜포미술관이 1987년 구입한 '해바라기'. 고흐가 폴 고갱과 동거하던 1888년 말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솜포미술관이 1987년 구입한 '해바라기'. 고흐가 폴 고갱과 동거하던 1888년 말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후한 명작도 좋지만 더 반짝이는 거리에서 통통 튀는 동시대 미술과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 역시 많다. 도쿄 시민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이자 새로운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은 롯폰기다. 롯폰기 미술 중흥 프로젝트의 주역은 모리미술관, 국립신미술관, 산토리미술관을 잇는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이다. 이곳에도 미술을 사랑한 기업인이 있다. 모리미술관 뒤엔 ‘문화 도심’을 꿈꾼 모리 미노루 모리빌딩 회장, 산토리미술관 뒤엔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히비키’로 유명한 산토리를 창업한 도리이 신지로가 있었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앞뜰에서 볼 수 있는 로댕의 '지옥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앞뜰에서 볼 수 있는 로댕의 '지옥문'.

서양 인상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대단하다. 일본 기업인 마쓰카타 고지로 역시 인상주의 애호가였다. 그의 대표 컬렉션으로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손꼽힌다. 100년 전 마쓰카타가 유럽 각지에서 1만 점에 달하는 작품을 모은 것은 자신의 취미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에 미술관을 세워 젊은 화가들에게 진정한 서양 미술을 보여주려 했다. 문화 강국이 되는 데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고, 기업이 지원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미술로 이루려던 ‘교라쿠’(共樂·함께 즐기자)라는 마쓰카타의 꿈은 사후 실현됐다.

‘마쓰카타 컬렉션’ 국립서양미술관

메이지 시대 총리를 두 차례 지낸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셋째 아들 마쓰카타는 미국, 유럽에서 유학하며 서구 문물을 일찍 접했다. 귀국 후 1896년 가와사키조선소(현 가와사키중공업) 초대 사장을 맡았다. 당시 조선업은 1차 세계대전으로 호황을 누렸고, 큰돈을 번 그는 1910~1920년대 유럽을 다니며 미술품 구매에 열을 올렸다.

마쓰카타는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을 대거 사들였다. 특히 ‘수련’을 얻기 위해 1921년 프랑스 인상파 거장 모네의 작업실을 찾아간 일화는 유명하다. “거장의 그림을 직접 본 적 없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당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진정 어린 설득에 모네는 수십 점을 내줬다.

마쓰카타의 사업은 그러나 1927년 ‘쇼와 공황’ 여파로 큰 타격을 받았다. 빚을 갚기 위해 주요 소장품을 처분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영국 런던에 있던 소장품은 1939년 화재로 모두 잃었다. 다만 프랑스 파리에 보관하던 작품 약 400점은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라 모두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이후 일본 정부는 마쓰카타 컬렉션이 개인의 재산이라며 반환을 요청했고, 프랑스 정부는 우호 회복의 표시로 소장품 대부분을 돌려주기로 했다. 다만 “도쿄에 전용 미술관을 마련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설계는 프랑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맡았다. 1959년 마쓰카타 컬렉션이 요코하마항에 도착했고, 그렇게 국립서양미술관이 개관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2007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201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소장품은 계속 늘어 현재 약 6000점에 이른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외관.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 / 사진출처.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홈페이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외관.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 / 사진출처.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홈페이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전시 공간. / 사진 출처.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홈페이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전시 공간. / 사진 출처.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홈페이지
신주쿠의 ‘해바라기’ 솜포미술관

“이 거리에는 ‘해바라기’가 있다.” 일본 최초 손해보험사 솜포재팬의 미술재단이 운영하는 솜포미술관의 브랜드 메시지다. 이 미술관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등 소장 작품을 미래 세대에 계승하고 있다.

시작은 솜포재팬 전신 야스다화재해상이 1976년 본사 42층에 개관한 ‘도고 세이지 미술관’이었다. 야스다화재 인쇄물 디자인을 맡았던 일본의 서양화가 도고 세이지에게 컬렉션을 기증받아 주로 그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도고는 20대 시절 프랑스에서 파블로 피카소에게 독자적인 스타일을 관철하는 자세를 배우고, 서양화의 전통 기법을 연구했다. 귀국 후 현대 여성의 새로운 이상형을 만들어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이 미술관은 1987년 ‘해바라기’를 구입하며 컬렉션을 확장했다. 이 ‘해바라기’는 고흐가 존경했던 화가 폴 고갱과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동거한 1888년 말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관 앞마당엔 ‘해바라기’ 도판 복제화를 두고 작품을 손으로 만지고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곳이 신주쿠의 예술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이유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미술관을 설립한 지 44년이 지난 2020년. 이 미술관은 같은 건물 부지에 완공된 신관으로 이전하며 솜포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예술 조각 같은 6층짜리 건물은 도고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부드러운 곡선을 입혔다. 지난 3월 말까지 누적 방문객 690만 명을 기록했다.
도쿄 신주쿠 역에 위치한 솜포미술관.
도쿄 신주쿠 역에 위치한 솜포미술관.
日 타이어의 아버지가 낳은 아티존미술관

일본의 세계적 타이어 회사 브리지스톤타이어를 창업한 이시바시 쇼지로 역시 뛰어난 기업가이면서 미술을 사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수집한 계기는 고등소학교 시절 미술 교사였던 서양화가 사카모토 시게지로와의 만남이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화가 아오키 시게루의 작품이 흩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카모토는 이시바시에게 아오키의 작품을 모아 미술관을 설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감동한 이시바시는 아오키를 중심으로 약 10년간 컬렉션을 형성해 나갔다.

이시바시는 “아오키 등 서양화가 작품과 그들이 본보기로 삼은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 빛을 발할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 후 매물로 나온 전쟁 전 서양 미술품을 적극 구매했다. 특히 인상파를 선호했다.

1950년 첫 미국 방문 때 도심 빌딩에 있던 뉴욕근대미술관에 강한 감명을 받은 이시바시는 도쿄 교바시에 건설 중인 본사 빌딩 2층을 서둘러 미술관으로 꾸며 자신의 컬렉션을 일반에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그림을 골라 사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지만, 원래 이런 명품은 개인이 소장할 게 아니다. 미술관을 설립해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다.” 그렇게 1952년 브리지스톤미술관이 개관했다.

브리지스톤미술관은 2020년 새로 지은 23층 빌딩 ‘뮤지엄 타워 교바시’로 옮겨 아티존(art+horizon)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고대 미술, 인상파, 일본 근세 미술, 일본 근대 서양화, 20세기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약 3000점에 달하는 컬렉션을 보유했다.
됴쿄 아티존미술관이 보유한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과 누아 성'.
됴쿄 아티존미술관이 보유한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과 누아 성'.
아티존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바실리 칸딘스키 '스스로 빛난다'.
아티존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바실리 칸딘스키 '스스로 빛난다'.
도심 속 전통美, 1만7000㎡ 정원이 빛나는 네즈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패션 거리 중 하나인 도쿄 오모테산도는 세계 정상급 건축가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디올, 꼼데가르송, 프라다의 화려한 쇼윈도에 빠져 걷다 보면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40m나 이어진 대나무 숲길이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다른 세계의 입구, 미술관 정문이 드러난다. 1941년 개관한 동양 고미술 전문 네즈미술관이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야 비로소 드러나는 도쿄 네즈미술관.
대나무 숲길을 지나야 비로소 드러나는 도쿄 네즈미술관.
네즈미술관은 도부철도 사장 등을 지낸 일본의 ‘철도왕’ 네즈 가이치로가 수집한 일본과 동양의 고미술 컬렉션을 보존·전시하기 위해 설립됐다.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난 네즈는 젊은 시절부터 고미술품에 관심을 가졌다. 1896년 도쿄에 진출한 뒤 기업가, 정치인으로 활약하는 한편 다도에 빠지며 미술품 수집에 더욱 열을 올렸다. 컬렉션을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즐기는 것’이 네즈의 소원이었다.

그의 유지를 이어 2대 네즈가 1940년 재단을 설립하고, 이듬해 미술관을 열었다. 1945년 전쟁으로 전시실과 다실 등 대부분이 소실됐지만, 1954년 본관을 재건했다. 2009년 새로 지은 본관은 일본 전통가옥을 연상시키는 큰 지붕이 특징이다.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했다. 새 본관은 회화, 서적, 청동기, 다도 미술 등 각 특성에 맞춘 여섯 개 갤러리를 갖췄다. 본관 뒤로 펼쳐진 1만7000㎡에 달하는 정원에는 네 동의 다실까지 마련됐다. 정원 내 사계절 경치를 배경으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네즈카페도 유명하다. 미술관을 관람하기보다 정원 속 카페에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늘 긴 대기줄이 생길 정도다.

재단 설립 당시 4643점으로 시작한 소장품은 지난 3월 말 기준 7630점에 달한다. 국보 7점, 중요문화재 93점, 중요미술품 95점이 포함돼 있다. 오가타 고린의 ‘연자화도 병풍’이 대표적이다. 꽃은 군청, 잎은 녹청 두 가지 색만으로 묘사한 연자화(제비붓꽃)가 황금빛 바탕 위에 지천으로 널려 리듬감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 낸다. 네즈미술관이 자랑하는 소장품 1호이자 ‘일본 미술 국가대표’로도 꼽힌다.
네즈미술관의 본관은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했다. 일본 국보와 중요문화재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네즈미술관의 본관은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했다. 일본 국보와 중요문화재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