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들은 수업 복습할 때 혼자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F=ma(뉴턴의 운동법칙) 공부하는 사태가 옵니다.”

최근 한 입시 커뮤니티에서 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에 응시하고 공과대학에 진학하는 이른바 ‘사탐런’을 고민하는 수험생에게 한 ‘입시 선배’가 내놓은 조언이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강을 듣는 대학생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생의 기초학력 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들이 나서서 사교육 인강 구독권을 끊어주고 있어서다. 대학 신입생의 학력 수준과 대학 교육 간 격차는 날로 벌어지는데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여력이 되지 않는 대학들이 궁여지책으로 학생에게 사교육을 권하는 것이다.

◇‘기초교육’ 사교육에 넘긴 대학

8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의 한 4년제 사립대는 ‘기초학력 증진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메가스터디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대상 인터넷강의인 ‘유니스터디’ 수강권을 제공하고 있다. 과목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경제 경영 등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는 마일리지도 준다. 마일리지를 많이 쌓으면 장학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도록 해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수업에는 ‘수포자(수학포기자)를 위한 중등 수학’ 등의 과목까지 개설돼 있다.

특정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생 인강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유니스터디는 30여 개 대학과 손잡고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경제 등의 과목에 대해 기초학력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3만 명 이상의 대학생이 수업을 들었다.

◇전공 못 따라가는 공대생

대학생의 기초 학력 공백은 입시 제도와 대학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특히 이과 계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취업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유로 공대 선호현상은 심화하고 있는데, 정작 공대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조차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능에서 미적분과 물리·화학 등을 선택하지 않는다. 수능에서 물리·화학을 선택한 학생은 2022학년도 수능 기준 13만6091명에서 2025학년도 기준 10만2123명으로 3년 만에 25% 줄었다. 지난해에는 사회탐구를 선택한 학생이 이과계열 학과에 진학하는 사탐런 현상이 심화하면서 전공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대생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게 대학들의 평가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정부는 산업 현장의 수요에 발맞춰 반도체학과 배터리학과 등 첨단 학과를 육성하겠다고 하는데, 교육 현장에서는 그 근간이 되는 물리·화학 선택자 비율이 25.7%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교육 인강 업체들은 반도체학과와 배터리학과 입학생을 대상으로 ‘알기 쉬운 기초 반도체 공학’ ‘배터리 한 방에 끝내기’ 등의 강의를 개설하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기초 학문 교육 역량·자원 부족”

문제는 일부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학이 학습 콘텐츠를 제공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無)전공과 첨단학과를 신설 및 육성하는 과정에서 기초 학문을 다루는 학과들은 통폐합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기초 학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전자공학과 등 공대 학생에게 ‘기초 물리’ 과목의 사교육 인강 수강권을 제공하는 또 다른 수도권 사립대에는 학부에 물리학과가 없다.

기초 학문 영역에서 사교육이 대학 수업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기초 학문 고사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성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은 “대학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배우는 곳인데, 스타 강사가 요점 정리를 통해 답 맞히는 법을 알려주는 사교육에 교육의 기능을 넘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재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