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 명동 환전소에 원달러 환율 등 시세가 안내된 모습. / 뉴스1
지난달 25일 서울 명동 환전소에 원달러 환율 등 시세가 안내된 모습. / 뉴스1
한미 양국협상단이 지난주 환율협의를 진행했다고 보도가 발표되자 원화가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궁극적으로 달러를 약화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앞서 스티브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의 리포트에서 제2의 플라자합의와 같은 마러라고 합의를 추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요. 달러 강세가 과도한 게 미국 제조업이 잘 안 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보니, 이를 해결하려면 달러를 약세로 만드는 정책을 실시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각국과 통화 관련 논의를 하겠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상대국 가치가 절상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만달러가 먼저 상승하고 우리 원화가 올랐고, 어제 오늘 사이에는 원화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미가 통화정책 협의를 진행했다는 소식에 달러대비 원화가치는 한때 달러당 1375원까지 높아졌다가 현재 1400원대 초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캡처
한미가 통화정책 협의를 진행했다는 소식에 달러대비 원화가치는 한때 달러당 1375원까지 높아졌다가 현재 1400원대 초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캡처
백악관의 공식적인 입장은 현재 약달러정책을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관료들은 전세계 무역협상에서 통화정책 약속을 다루지 않겠다는 지침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만이 통화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요, 베선트 장관은 대외적으로는 강달러 정책이 “온전하다”, “그대로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관세로 인한 인플레 효과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강달러가 당장은 조금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시장은 베선트 장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동맹국에 통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시장에 많이 퍼져 있고, 전문가들의 시각도 그런 쪽에 많이 기울어 있습니다.

일단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는 통화정책까지는 논의가 없었다는 게 백악관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첫 협상에서 베선트 장관은 우리 정부에 환율 문제를 따로 논의하자고 얘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이달 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남이 이뤄졌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일본이나 대만과도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지가 공개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현재 상황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에게 절상을 요구하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환율을 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절상을 시도한다 해도 시장에서 금세 소화가 되어서 결국 환율이 크게 바뀌지도 않고 비용만 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통화정책 관련 전문가는 "양국 정부가 모두 원화가치 절상을 하기로 합의를 한다 해도 그런 포지션이 외부에 공개적으로 노출되면 더욱 더 효과가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반대 포지션을 잡아서 공격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확실해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베선트 장관 본인이 1992년 조지 소로스와 함께 시장에서 영국 중앙은행의 파운드화 가치 수호 계획에 맞서 파운드화에 대규모 하락 베팅을 거는 방식으로 공격해 '검은 수요일'을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하나입니다. 이런 위험을 그가 모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일단 미국 정부가 환율 협상을 한다 해도 그 안에는 환시장 개입을 줄이고 놔두라는 요구 정도가 포함될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베선트 장관에 비해서 공격적인 시장 개입이나 왜곡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인 만큼, 실제 어떤 요구가 나올 지는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