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특별시의회가 서울 학생들의 기초학력 진단 결과를 학교별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조례안이 상위 법령에 어긋나지 않아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가 기초학력 보장을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사무로 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단심으로 진행돼 이날 판결과 동시에 확정됐다.

대법원은 해당 조례안이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 사무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에게 위임된 ‘기관위임사무’는 지방의회가 조례로 규율할 수 없지만, 기초학력 보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기초학력 보장과 관련한 ‘최소한의 성취 기준’과 시행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각 지역의 실정과 여건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며 “이는 전국적으로 일률적으로 정할 사무가 아니라 지역 교육환경과 기초학력 수준 등을 반영해 조례로 규율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됐던 진단검사 결과의 지역별·학교별 공개 조항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학교 명칭을 기호화해 익명으로 처리하면 서열화 우려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해당 조항은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이나 기초학력보장법의 입법 취지와도 충돌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3월, 서울 지역 초·중·고교의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를 학교장이 학교별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매년 3~4월께 실시되며 진단검사의 결과는 그동안 학교 내부에만 공유돼 왔다. 당시 서울시의회는 코로나19 이후 심화한 학습 격차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증가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조례를 추진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간 서열화 우려가 있다”며 조례 재의를 요구했고, 서울시의회가 이를 다시 의결하자 교육감은 공포를 거부했다. 이에 같은 해 5월 서울시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조례를 공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반발해 “기초학력 보장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에 해당하며, 서울시의회가 조례로 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또 학교별 진단 결과 공개 조항이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후 대법원이 2023년 6월 조례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해당 조례의 효력은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판결이 기초학력 보장 관련 사무가 자치사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지방의회의 조례 제정권 범위를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해당 조례는 서울형 기초학력 기준 마련과 함께 지역 주민의 교육 참여를 유도해 기초학력 신장에 기여할 수 있다”며 그 공익적 성격도 인정했다.

황동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