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안의 부동산 칼럼] 허위 임차권 신고, 경매방해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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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경매에서 ‘허위의 임차권’은 단순한 농간일까?
경매 실무에서 흔히 마주하는 장면 중 하나는, 실제로는 임차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임차인이라고 주장하며 권리신고와 배당요구를 하는 경우입니다.
당사자는 ‘배당도 못 받았고 피해도 없었는데 뭐가 문제냐’며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경매 절차에서 허위로 임차권을 주장한 행위가 형법상 ‘경매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며, 경매 절차의 공정성 보호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형법 제315조(경매, 입찰의 방해)
“위계 또는 위력 기타 방법으로 경매 또는 입찰의 공정을 해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은 경매나 입찰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위험 상태’**입니다. 즉,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공정한 경쟁이 왜곡될 가능성 있는 상황만으로도 범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를 ‘추상적 위험범’이라 합니다.
대법원이 판단한 허위 임차권의 실질적 문제
해당 사건에서 피고인은, 실제 임차인이 아님에도 법원에 임차권을 신고하고 배당요구까지 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허위의 임차권은 법원 집행관의 현황조사보고서, 그리고 매각물건명세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경매에 참여하려는 입찰자들에게 실제보다 불리한 정보로 인식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린 이유
원심 판단:
피고인의 임차권보다 선순위 근저당권이 존재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배당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보았음. 따라서 결과적으로 피해가 없으므로 무죄로 판단함
대법원 판단:
허위 임차권이 입찰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로 공개되었고 이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왜곡할 수 있으므로 공정성을 해한 행위로서 죄가 성립된다고 보았음.
경매방해죄는 결과가 아닌 ‘영향 가능성’을 본다. 대법원은 경매방해죄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경매의 공정을 해하는 행위란, 실제로 입찰자가 불이익을 입었는지 여부를 떠나, 입찰자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된다.”
쉽게 말해, 명세서에 허위 임차인이 기재되어 있으면 입찰자는 “이 물건은 인수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입찰을 포기하거나 가격을 낮출 수 있으며, 이런 상태 자체가 이미 공정한 자유경쟁을 침해한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실무자와 투자자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
이 판례는 단순히 한 사람의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경매 시스템 전체에 대한 법적 보호의 범위와 기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허위로 임차권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 가능.
배당 순위나 실질 배당 여부는 형사책임과 별개.
경매는 신뢰가 생명이며, 작은 정보 왜곡도 전체 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음.
입찰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 조작은 매우 민감한 문제.
경매는 법의 신뢰 위에 서야 한다
경매는 단순히 ‘싸게 낙찰받는 기술’만으로 이뤄지는 시장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법적 권리관계와 절차적 신뢰가 얽혀 있습니다.
허위 정보로 상대의 판단을 흐리는 순간,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형법 제315조는 이 점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경매 실무자, 컨설턴트, 입찰 참여자 모두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경쟁하고 판단하는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할 시점입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도기안 대한공경매사협회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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