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 반 덴 호브  imec 회장 겸 CEO
루크 반 덴 호브 imec 회장 겸 CEO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로봇, 자율주행차 등에 구현되는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가 엄청난 작업 처리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연구개발(R&D) 기관 imec의 루크 반 덴 호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반도체업계에 ‘강력한 혁신’을 주문했다. 20~21일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리는 imec 주최의 유럽 최대 반도체 콘퍼런스 ‘ITF 2025’의 개막식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호브 회장은 현장에 참석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CEO와 기술 임원에게 “AI와 인류의 미래는 반도체 혁신에 달렸다”며 “반도체 개발 방식을 다시 창조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호브 회장은 2009년부터 imec을 이끈 세계적인 반도체 공정·소자 전문가다. 삼성전자, 엔비디아, TSMC, ASML, SK하이닉스, 인텔 등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과 공동 R&D를 진행하는 imec은 반도체 기술 트렌드를 가장 잘 아는 곳으로 통한다. 이런 imec을 이끄는 호브 회장이 ‘반도체 재창조’를 언급한 것은 반도체 성능 향상 속도가 AI를 못 따라가는 ‘병목현상’을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장 건강 모니터용 캡슐형 센서
장 건강 모니터용 캡슐형 센서
호브 회장은 “한 달이 멀다 하고 딥시크 같은 새로운 AI 모델이 나오고 챗GPT 등 주요 AI 서비스가 업데이트되는데 데이터 학습·연산·처리를 담당하는 반도체의 성능 향상 속도는 더디다”고 평가했다.

AI가 데이터 학습을 기초로 한 대규모언어모델(LLM)에서 의료, 로봇,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는 ‘추론’(서비스) 중심으로 바뀌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기존 AI 반도체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호브 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반도체 연산 능력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추론 모델로 나아갈 때는 양상이 달라진다”며 “일부 모델은 중앙처리장치(CPU), 일부는 GPU로 대응할 수 있지만 현재 딱 맞는 프로세서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빅테크가 맞춤형 AI 칩을 개발해도 전례 없는 수준의 AI 혁신 속도를 따라잡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호브 회장이 내놓은 해법은 ‘유연성’이다. 그는 “반도체도 소프트웨어처럼 ‘코딩’이 가능해져야 한다”며 “같은 반도체라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능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각기 다른 기능에 최적화한 프로세서를 수직으로 쌓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시시각각 기능을 조절하는 ‘슈퍼셀’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메모리와 프로세서의 배치를 가깝게 해 에너지 사용량을 80% 절감하는 기술도 공개했다.

호브 회장은 “반도체 기능을 재구성할 수 있는 개발 방식을 도입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특정 AI 작업에 맞는 자체 반도체도 설계할 수 있다”며 “AI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인류 미래가 반도체 혁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imec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시제품도 선보였다. 대표적인 게 ‘장 건강 모니터용 캡슐형 센서(반도체)’다. 알약처럼 생긴 센서를 삼키면 최단 24시간, 최장 1주일간 체내에 머무르며 내시경에 잡히지 않는 위장관을 실시간 진단할 수 있다. 임상시험 결과 실용성을 입증했다고 imec은 설명했다.

안트베르펜=황정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