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우주 후방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초석을 놓고 있다. 삼성벤처투자가 올초 미국 실리콘밸리의 위성 스타트업 로프트오비탈에 투자한 데 이어 최근 삼성물산이 우주 로켓 발사장을 포함한 ‘스페이스 플랜트’ 관련 초기 연구개발(R&D)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343%' 수요 폭발한다…삼성 뛰어든 '블루오션' 정체
20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와 우주 발사장 건설을 위한 R&D 시설 구축을 논의 중이다. 발사장 건설은 우주 후방산업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올해 초 삼성전자의 선행 연구개발 조직인 삼성리서치가 우주 전문가를 처음으로 채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우주 반도체 탑재한 KF-21 > 방위사업청이 자력으로 개발한 전투기 KF-21의 양산 1호기 최종 조립 현장을 20일 공개했다. 방사청은 KF-21의 ‘눈’인 AESA 레이더에 들어가는 화합물 반도체인 MMIC 모듈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방사청 제공
< 우주 반도체 탑재한 KF-21 > 방위사업청이 자력으로 개발한 전투기 KF-21의 양산 1호기 최종 조립 현장을 20일 공개했다. 방사청은 KF-21의 ‘눈’인 AESA 레이더에 들어가는 화합물 반도체인 MMIC 모듈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방사청 제공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스페이스X를 앞세운 미국이 7개 발사장을 보유해 가장 앞서 있다. 위성 수요가 폭증하면서 로켓(발사체) 못지않게 발사장 건설 시장이 활짝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우주 발사 서비스 시장은 2025년 약 51억달러에서 2034년까지 약 187억달러로 연평균 13.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우주 후방산업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형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반도체와 원전, 해양 플랜트 등 제조 분야 역량을 우주 산업으로 이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말했다. 고열을 견딜 지하 발사장 건설엔 최신 플랜트 공법이 필수다. 원전 역시 차세대 스페이스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NASA의 아르테미스 2호에 탑재될 우주방사선 측정용 큐브위성(K-RadCube) 프로젝트에 참여해 우주 환경에서의 반도체 성능을 검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은 위성과 차세대 전투기에 쓸 단일기판 마이크로파 집적회로(MMIC) 등 우주 국방 반도체 5종의 국산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위성 수요, 10년간 343% 폭발'…우주 인프라 청사진 그리는 삼성
삼성, 우주산업 진출…'후방 산업' 공략나선 K제조업

지난 13일 이틀 일정으로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 최대 우주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뉴스페이스 애틀랜틱서밋. 올해 행사 슬로건은 ‘비우주 기업의 우주 진입’이었다. 발사장 건설을 포함해 전기·전자, 소재, 발전, 물류 인프라 등 우주 시대를 활짝 열기 위해선 우주 후방 산업의 뒷받침이 필수라는 점이 주로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우주 전문 투자사 세라핌스페이스는 10년 후 우주산업 규모가 1조달러에 달하고 비우주 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이 세계 5대 우주강국에 진입하려면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로켓 제작이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심우주 탐사보다 발사 인프라, 소재·부품·장비 등 우주 후방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플로리다에 ‘우주 공항’ 건립 유력

삼성이 우주 후방 산업 분야 진출을 위한 기초작업에 들어간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등과 우주 발사대 건설과 관련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발사장과 관련 설비 등 미래 우주 플랜트 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단계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산하 선행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는 우주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이들이 작성한 우주 전후방 산업 분석 리포트를 삼성 계열사들이 받아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벤처투자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과 함께 미국 위성 스타트업 로프트오비탈에 투자했다. 로프트오비탈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항공우주국(NASA), 유럽 최대 방산기업인 BAE시스템스와 유럽우주청(ESA)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세계 각국이 발사장 건설에 나서고 있는 점도 삼성물산 등 국내 건설업계의 우주사업 진출을 자극했다. 세계 반도체 제조 패권을 쥔 대만만 해도 우주 로켓 발사장을 한창 짓고 있다. 군용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가 방위산업연구소인 국가중산과학연구원이 있는 핑둥현 주펑 지역에 2030년께 들어설 예정이다. 영국은 최북단 셰틀랜드제도에 건설 중인 색사보드 우주발사장을 비롯해 네 곳에 발사장을 짓고 있다. 노르웨이 안도야우주센터는 연구용 발사체를 넘어 소형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는 곳으로 개조되고 있다. 스웨덴은 지난 1월 소형 발사체 발사장인 에스랑우주센터를 개장했다.

우주 인프라 분야를 선도하는 미국은 연방항공청(FAA) 주도로 국가 우주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로켓 발사 개념을 넘어 재사용 발사체 특화 착륙장과 상시 우주여행을 가능케 할 인프라, 우주선 수송·정비를 아우르는 ‘스페이스 포트 콤플렉스’ 건설이 목표다. 장소는 플로리다주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블루오션 ‘우주 포트’ 선점해야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주목한 우주 발사장 시장을 한국이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주 산업의 바로미터인 위성 수요 증가는 발사장 건설 시장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글로벌 위성 수요는 지난 10년(2012~2021년) 동안 5519기였으나 이후 10년(2022~2031년) 간 2만4468기로 343%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 우주 스타트업 대표는 “배달 물건과 배송 차량은 늘어나는데 터미널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우주 발사장 건설의 중요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발사 시스템의 극히 일부분만 지상에 드러나서다. 발사장 지하에는 로켓 연료, 산화제, 각종 가스를 저장하는 탱크가 많고 이를 발사체로 공급하기 위한 배관과 서브시스템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발사장 배관은 평균 1.5㎞ 길이로 문어발처럼 깔려 있다.

우주 발사장은 고온·극저온 소재, 초정밀 진동 제어, 자동화 운영 설비 등 고난도 엔지니어링이 망라된 융합 산업이다. 발사장과 부대 시설은 엔진이 분사하는 3000도 이상의 화염을 견딜 수 있게 건설해야 한다.

극한의 고열로부터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해 로켓 발사 시 대량의 물을 쏟아내는 워터델루지 시스템도 초고층 빌딩, 북극·심해 플랜트 등을 시공해본 국내 대형 건설사 입장에선 충분히 선점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우주 후방 산업

발사대 건설 및 운영, 저궤도 우주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프라와 반도체 등 소재·부품·장비를 개발 제조하는 뉴스페이스 시대 신산업.

강경주/이해성 기자 [email protected]